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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임섭 산우회 기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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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14 북한산 산행기
동행은 반갑다.
4호선 지하철은 충무로역에 도착했고 하필이면 같은 칸에 호연이가 탄다. 어이 호연아 하고 부른다. 반갑다.
동행이 생겼다. 일단 집을 나서면 가는 길이 멀든 가깝든 동행이 있으면 좋다. 안심이 되고 푸근하다. 8시
20분 수유역에서 120번 버스를 갈아탄다. 오늘 도봉산을 같이 오를 동행자는 누구일까? 원호연, 김임섭,
최영순과 사모님(이현교), 방석순, 김강복, 박태국 오늘의 동행자가 정해졌다. 모두 8명이다.
마누라가 곰국을 끓이면
부부가 나란히 참석하던 석순이가 그린파크 앞으로 혼자 온다. 항상 둘이서 왔었기에 혼자 온 이유가 궁금하다.
처갓집에 갔단다. 누군가가 묻는다. 그러면 곰국을 끓여 놓고 갔겠네?. 석순이가 되묻는다 ‘곰국은 왜?’ 이
나이에는 마누라가 며칠 집을 비울 거면 미리 곰국부터 끓인다는 걸 석순이는 아직 모르고 있으니 석순이는 참
착하다. 아니 석순이네 사모님이 더 착할지 모른다. 이런저런 얘기로 웃고 떠들다가 10시 15분 도봉산으로
출발한다.
도봉산엘 오르다.
도봉산은 서울의 북단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양주군 장흥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서울의 진산으로 여겨져
오고 있으며 교통이 편리하고 산세가 아름다운 데다 바위가 마치 금강산의 일부를 보는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아름다워 1983년 4월 북한산과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휴일에는 사람이 많으니 산행을 즐기려면
평일에 가라고 어쩌구 저쩌구 인터넷에 쓰여 있다.
최정길을 만나다.
그린파크에서 우이암 쪽으로 오르려면 초입에 깔닥고개를 만난다. 다 올라서 숨고르기를 하면 걷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오는 등산객이 최영순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스친다. 뒤를 따라가던 나는 ‘야 저 남자가 널
뚫어지게...’. 영순이는 나에게 ‘재가 정길이...’. 그 남자는 영순에게 ‘저... 동창아닙니까?’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랬다. 그 남자는 3학년2반 나의 짝궁 최정길이었다. 반갑다. 동네사람들하고 도봉산엘 왔다고 했다. 집은
방학동에 있으며, 마나님이 부근에서 목욕탕을 한다고 누군가가 일러준다. 전북 익산에서 한일내장의 대표이사를
하고 있단다. 아직도 현직에 있는 무지 얄미운(?) 녀석이다.
부창부수
눈이 온지 며칠이 지났지만 산길은 여전히 미끄럽다. 평지야 어떻게 조심을 한다지만 약간이라도 경사진 길은
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어이쿠’하고 영순이가 털썩 주저앉는다. 얼마쯤 가다가는 영순이의 사모님이 ‘어마나’하며
털썩 주저앉는다. 여전히 아이젠을 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애매하다. 이번에는 하산길이다. 이미 아인젠은
풀어버려서 부분 부분 나타나는 빙판길을 나뭇가지를 붙잡거나 바위에 의지하여 조심조심 내려온다. ‘어이쿠’ 뒤
따라 오던 영순이가 또 주저앉는다. 두 번째다. 부창부수라면 다음은 영순이 사모님 차롄데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랬다. 부창부수라는 말이 그냥 생긴 말이 아니다. ‘에그머니! 호호호’ 영순사모님이 또
엉덩방아를 찧는다. 두분의 금슬이 이렇게 까지 좋을 줄이야.
사십계단
우이암쪽 능선에서 자운봉 쪽으로 가려면 자운봉 앞의 봉우리(봉우리 이름은 금석이가 알던데...)를 왼쪽으로
우회하는 길이 있다. 상당한 깊이까지 내려갔다가 또 그만큼을 올라와야하는데 얼마 전에 계단이 설치되었다. 그
쪽은 응달이라 계단위에 눈이 수북하다. 우리 산다람쥐 회장은 죽 널어진 계단을 내려가며 ‘사십계단 층츠응~대에
앉아 우는 나아~그네’하고 콧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이때 우당탕탕 누군가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김강복이다. 무려 계단 8개를 미끄러져 내려가서 털썩 주저앉아 있다. 엉겹결에 일어난 일이라 망연자실하여
한참을 그러고 있더니 오른쪽 팔목이 이상하다며 일어선다. 영순이 사모님이 무릎에 차고 있던 압박붕대를 푼다.
임섭이가 위생병 하던 실력을 발휘하여 강복이에게 붕대를 감아준다. 아이젠을 하라마라 얘기할 필요도 없이 모두
아이젠을 꺼낸다.
이모네
도봉산을 빠져 나오면 왼쪽에 8848이라는 네온사인이 걸린 3층 높이의 건물이 있다. 8848은 에베레스트산
높이란다. 8882로 외고 있었는데, 내가 틀린걸까, 8848이 틀린걸까. 아무튼 그곳을 지나 왼쪽으로
골목을 들어서면 중간쯤에 이모네라는 꽤 규모가 큰 천막지붕 포장마차집이 있다. 메추리구이, 빙어 튀김,
양미리 구이로 소주를 몇 병 죽인다. 오늘 산행도 유쾌하다. 물론 다음 산행도 유쾌하겠지. 계산을 끝냈더니
2만8천원이 남았다고 총무가 어린애 같이 좋아라한다. 포장마차를 나와 누구는 전철역으로 누구는 버스정류장을
흩어진다. 겨울 도봉산 기슭의 밤공기가 싸아~ 하게 볼을 스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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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04 시산제 보고
1. 2월 27일 회장, 총무, 유희봉군, 백금석군, 박홍식군이 교대 앞 설렁탕집에서 저녁 먹으면서 시산제
사전모의를 하다.
- 제수 준비는 회장이 하고 시산제날 아침에 차로 나르기로 한다.
- 시산제 사회는 유희봉군이 보기로 한다.
- 시산제 제문은 백금석군이 작성하고 당일 고하기로 한다.
- 3월 1일 사전답사 산행을 한다.
- 일기예보에 3월4일은 비가 온단다. 일기예보를 안 믿을 수도 없고 믿자니 걱정이다.
2. 3월 1일 회장, 총무, 유희봉군, 도근회군, 정익신군 5명이서 사전답사 산행을 하다.
- 시산제 장소는 작년에도 지낸 곳, 즉 구기파출소에서 이북5도청을 지나 연화사를 지나, 비봉으로 오르는
길에 있는 집터인지 절터인지 잘 다듬어진 곳으로 정하다.
- 시산제 후 산에 오를 사람은 간단히 비봉을 돌아 뒤풀이 장소로 가기로 하고, 아닌 사람은 그냥 뒤풀이
장소로 가기로 하다.
- 뒤풀이 장소는 옛날민속집으로 정하고 미리 예약을 하다. 33회 산우회에서도 미리 예약을 하고 갔다 한다.
3. 3월 2일 비는 억수로 내리고
- 동창회 총무 오재홍군과 합동으로 팩스도 날리고, 핸드폰 문자메시지도 날리고 참석 독려 전화도 걸고 부산을
떨다.
- 산우회 깃발이 설정구로부터 택배로 보내왔다고 회장의 기별이다.
4. 3월 3일 비는 안 오고 잔뜩 흐림
- 동창회회장 오석호군이 시산제 기념품으로 모자를 준비했다고 기별을 받다.
- 내일 날씨가 아무래도 수상하여 동대문시장에서 텐트차일을 샀다고 백금석군으로부터 연락받다.
5. 3월 4일 시산제 당일
- 시산제 장소는 남들에게 빼앗길가 백금석군이 새벽같이 나와서 지키고
- 회장은 두 아들의 도움을 받아 제수꺼리를 차로 실고 왔고
- 유희봉군은 구기파출소 앞에서 친구들을 안내하다.
- 33회, 36회, 40, 43회, 51회도 시산제 날이란다.
6. 시산제
- 차일을 다 치기도 전에 빗방울이 떨어지다.
- 총동창회 산우회에서 우정 방문왔고,
- 백금석, 박종원, 전봉구, 유희봉, 김임섭, 오재홍, 원호연, 길영순, 이문선, 오석호, 김강복,
김지영, 박경호, 길영순, 박태국, 민병성, 이승배, 이상봉, 장웅태, 허성부, 최홍, 최영순부부, 이은구,
원정상, 도근회, 박효순, 윤영섭, 이우철, 김영걸, 문시헌, 박홍식, 김종기, 방석순, 박훈신, 박래원
이상 대략 선착순으로 35명
- 도야지 머리 이쁜 놈으로 1개, 시루떡 1말, 서울쌀막걸리 22병, 참이슬 10병, 돼지머리고기, 족발,
김치, 사과, 배, 감귤, 등등
- 국민의례, 애국가제창, 먼저 간 동창에 대한 묵념은 생략되었고,
- 회장인사, 제례강신, 초혼, 참신, 초헌, 독축, 아헌, 종헌, 헌작, 음복, 사진촬영, 하산
7. 뒤풀이
- 옛날민속집 2층에서 두부김치와 버섯찌게로 막걸리와 소주를,
- 옛날민속집 5층에서 노래 부르면서 맥주를
- 북아현동 박효순군 선술집에서 소주와 막걸리를
- 효순이네 가게 부근 노래방에서 맥주를 죽이다.
8. 특별히 감사드릴 분
. 모자 50개를 흔쾌히 기증한 오석호 동창회장
. 팩스 및 핸드폰 메시지를 두번씩이나 날려준 오재홍 동창회 총무
. 커다란 주황색 차일을 갖고 와서 비를 피하게 해준 백금석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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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18 광교산 산행기
분당 체험.
오늘 산행의 집합지는 분당 미금역이다. 사실 분당이나, 안양 등 서울의 남쪽에
사는 친구들이 서울 하고도 북쪽에 있는 산으로 오기에는 거리가 좀 멀다. 분당에서 출발하여, 구기동이나,
정릉이나, 구파발로 아침 10시에 맞추어서 오려면 도대체 집을 몇 시에 나와야 한다는 말인가. 친구가
좋다고, 산이 좋다고 그 먼 거리를 멀다않고 참석해주는 그 동네의 친구들이 고맙다. 그래서 오늘은 얼마나
먼지 체험의 날. 서울에서 분당에 있는 산으로 거꾸로 출격이다. 분당 사는 유희봉, 이우철 장웅태, 홍영화,
도대식, 도범식 그리고 도곡동 사는 박홍식이는 아주 느긋한 표정으로 왔지만 일산에서 여기까지 온 도근회는
아침에 꽤나 부지런을 떨었을게다. 원호연, 김임섭, 백금석, 원정상, 김창민, 이춘호, 최영순 부부가 오늘의
일행이다. 그러고 보니 귀한 성씨인 도씨가 세 명이나 되네.
마라톤선수 오재홍과 이봉주.
미금역에서 광교산아래 고기리로 가는 3번 마을버스는 1시간에 1대씩이다. 10시 45분 출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핸드폰 DMB방송으로 우리의 호프 오재홍군이 출전하는 동아마라톤대회의 중계방송을 본다. 원호연은 아예
소형 DMB TV를 들고 왔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이봉주에서 오재홍군으로 옮아갔다. 지나 나나 환갑의 나이에
마라톤 풀코스가 왠 말이며, 완주가 왠 말인가? 뒤에 들으니 38살의 노익장 이봉주는 2시간 8분대로
골인했고 재홍이는 3시간 40분대로 골인 했단다. 장하다 경복의 아들, 대한의 남아 오재홍. 나는 60의
나이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재홍이와 친구라는 게 몹시 자랑스럽다.
광교산은.
경부고속도로와 서울 - 수원간 구도로 사이에서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다. 산 능선이 매우 완만하면서도 사방으로
수목이 우거져 삼림욕이나 당일 산행으로 즐겨 찾는 산이다. 예부터 광교적설(光橋積雪)이라고 겨울철 눈이 내려
나무에 수북이 쌓여있는 경치를 일컫는 말이 있는데 이를 수원 8경 중 으뜸으로 쳤다. 광교산은 산행이 버겁지
않고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산이지만 시루봉과 형제봉 오름은 가파른 길이라 만만하게 볼 수도 없는 곳이다.
또한 안내판과 시설물을 잘 정돈해 놓았고 수원시 당국의 보살핌이 각별한 점도 광교산을 찾게 되는 이유라
하겠다. 광교산은 원래 광악산(光嶽山)이라고 했다. 928년 고려 태조 왕건은 후백제의 견훤을 치고 돌아가다
이 산 기슭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그 때 이 산에서 빛이 솟아올라 태조 왕건에게 가르침을 주었다고 하며
이후로 광교산(부처님의 가르침을 주는 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상 인터넷.
양건일군이 보내준 우랑애(五糧液).
아직도 현역 고려해운 부사장으로 있는 양건일군이 도근회편에 중국술 우랑애를 보내왔다. 앞으로 산우회에 참석
할 예정이므로 우랑애로 미리 신고한단다. 내가 산우회에 처음 나올 때는 슬며시 그냥 나왔는데 역시 건일이는
다르다. 이쁜 녀석이다. 광교산 8부 능선 노루목의 양지 바른 곳에 16명이 둘러앉아 건일이를 얘기하며,
우랑애를 얘기하며, 또 재홍이를 얘기하며 무척 즐거운 점심이었다. 참고로 중국의 술 종류는 그 역사나 땅
넓이만큼 많아서 한 4500여종이 되며, 전국 평주회(評酒會)를 개최하여 금메달을 받은 술을 명주라 칭하고
중국정부에서는 8대 명주에만 중국명주라는 붉은 색 띠나 붉은 색 리본을 달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단다.
우리가 마신 우랑애에는 붉은색 띠가 있었든가 없었든가? 술이 취했었나 기억이 없다.
우철아 살살하자.
광교산의 주봉은 시루봉이다. 노루목에서 점심을 배부르게 먹은 우리는 586미터의 시루봉에 오르기가 숨이
차다. 봉우리의 표지가 특이하여 절에 있는 석등모양이라 하기에도 그렇고, 납골당모양이라고 하기에도 어색한
특이한 모양이다. 표지탑을 배경으로 일동은 증명사진을 찍는다. 이제 하산길인데 호연이는 형제봉을 거처서
하산하자고 하고, 광교산을 잘 아는 우철이는 그냥 하산길로 접어 들자한다. 한참 승강이를 하다 회장이 우철이
말을 따르자고 한다. 그런데 그럴게 아니었다. 광교산을 꾀고 있는 우철이를 따라 시루봉에서 한참을 내려갔다가
오르니 비로봉. 비로봉에서 또 한참을 내려갔다가 숨차게 또 오르니 이게 형제봉이다. 능선길인데도 불구하고
상하굴곡이 심하다. 선선히 자기 말을 안 들어 우철이가 화가 나서 뺑뺑이 돌린다고 엄살들을 부린다. 우철에게
살살하자커니 좀 봐 달라커니 떠들면서 부대 철조망을 끼고 또 오르고 내리고 이리저리 돌아서 성복동 큰 길로
빠져나왔다. 큰길 왼쪽 편 아파트단지에 우철이가 살고 도식이와 범식이는 맞은 편 아파트단지에 산다고 한다.
바다마트.
성북동에서 15번 버스를 타고 수지아파트단지를 지나 미금역으로 다시 왔다. 오늘의 뒤풀이는 생선회로 하자는
회장의 엄명(?)에 따라 횟집을 찾는다. 싸고 많이 주는 집을 우철이가 인도한다. 커다란 건물 지하실에 있는
바다마트라는 집이다. 광어와 도미 안주에 맥주도 마시고 소주도 마셨다. 홍영화가 노래방을 쏜단다. 7명은
먼저가고 9명이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렀다. 창민이는 마이웨이라는 신곡을 불렀고 대식이는 You
Cheating Heart도 부르고, Green Green Grass Of Home도 불렀다. 범식이는
노래에 맞추어 귀엽게 춤도 추며 그렇게 오늘의 분당체험은 끝나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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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25 북한산(정능)
3월의 마지막 일요일.
북한산을 오르자고 정능 옛 청수장 앞에 도근회, 원호연,
박홍식,방석순,백금석,이승배,장웅태,김임섭 여덟이 모였습니다. 식구들이 단출합니다.
청수장 옛날 매표소 자리를 지나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보국문을 향합니다. 봄을 타는 것인지, 진정 늙어서
인지 오늘 따라 다들 산길을 힘들어 합니다.
보국문을 나서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꼬뿌라면이 3명, 김밥이 1명, 도시락이 4명입니다. 정능 버스정류장
냉면집의 냉면을 Take-out 하여 갖고 온 도근회의 빈 코펠에 원호연의 오징어야채초무침이 비벼졌습니다.
여전히 장웅태와 김임섭은 좌우 눈치를 살피며, 도둑담배를 피웠습니다. 다른 사람은 측은한 눈초리로 못 본체
합니다. 내 같으면 이 눈치 저 눈치 안보고 담배 끊겠네.
양지바른 대동문 광장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와글와글 장터였었고, 우리는 용암문쪽으로 향했습니다. 용암문에서
도근회와 헤어지기로 한 계획을 바꾸어, 일동 모두가 구파발쪽으로 내려가기로 합니다. 원호연, 도근회 김임섭은
위문으로 돌아서오고, 나머지는 계곡을 질러 내려와 대서문을 향합니다.
산중턱 금북장에서 돼지고추장구이, 파전, 순두부로 소주와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금북장에서 대서문 매표소까지
걸어서 25분 거리를 음식점 주인장이 내어준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순식간에 구파발 전철역까지 왔습니다.
12인승 마이크로버스에 다른 팀과 합석으로 정원초과입니다. 비좁은 차안이 갑갑해서인지 한 두세살 되어 보이는
애기가 엄마 품안에서 전철역에서 내릴 때까지 악을 쓰며 울던 소리가 아직도 귀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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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08 인왕산과 북악산 아우러기
오늘의 행선지는 인왕산과 북악산.
인왕산이나 북악산이라면, 우리 까까머리 학창시절 때, 누구는 아리랑 담배갑을
숨기고, 누구는 삼학소주거나, 진로소주병을 숨기고 누구는 진명여고나, 배화여고 학생들이랑 여남은씩 올랐던 그
산이 아닌가. 질풍노도의 시절에 한 달음에 뛰어 올랐던 그 산을, 꿈 많던 시절의 아사한 추억을 떠 올리며
환갑의 나이에 숨차하며 뚜벅뚜벅 오른다.
오늘의 산행기는 어줍잖은 글 솜씨로 산행기랍시고 수작을 부릴게 아니라 인터넷에서 이리저리 짜깁기하여
역사탐방이나 나서 보자!
우리가 지났던 코스는 사직공원, 인왕산정상, 부암동, 창의문, 북악산정상, 숙정문, 삼청공원, 무교동 청일집.
글도 이 순서로 쫓아갑니다.
참석자는 원호연, 원정상, 백금석, 김임섭, 이우철, 유희봉, 박훈신, 박태국, 방석순, 박홍식, 민경은,
장웅태, 이은구, 유능화, 도근회, 김강복, 최영순 부부
사직공원
사직공원은 조선 태조가 한양에 수도를 정하고 궁궐과 종묘를 지을 때 함께 지은 사직단이 있는 곳으로, 일제
강점기인 1921년 사직단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구실 아래 부지를 분할하여 학교를 신설하고 우회도로를
개설하였다. 사직단은 태조 3년(1394년)에 고려의 예를 따라 토신을 제사하는 국사단을 동쪽에, 곡신을
제사하는 국직단은 서쪽에, 신좌를 북쪽에 배치해 놓고 1년에 세 번 제사를 지냈다. 사직단 입구 도로에
인접한 곳에 사직단 정문이 있는데 보물 제17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지붕이다. 1897년 고종이 황제가 되면서 ‘태사(太社)’ ‘태직(太稷)’이라고 높여 부르게 했던
사직단의 정문은 1962년의 도로확장공사 때 본래의 위치에서 14 m 가량 뒤쪽으로 밀려났다. 현재 공원
내에는 종로도서관 ·시립아동병원을 비롯하여 몇몇 공공건물이 들어서 있고, 그밖에 활터인 황학정과 단군성전
등이 있으며, 이이(李珥) ·신사임당(申師任堂)의 동상 등이 있다.
황학정
사직공원 내에 있는 황학정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5호로 고종 광무 2년(1898년) 어명에 의하여 경희궁
회상전 북쪽에 지었던 것을 일제에 의해 1922년에 현 위치로 옮긴 것이다. 조선시대 서울에는 궁술 연습을
위한 사정(射亭)이 다섯 군데 있었는데, 필운동의 등과정(登科亭), 옥동의 등룡정(登龍亭), 삼청동의 운룡정(雲龍亭),
사직동의 대송정(大松亭), 누상동의 풍소정(風嘯亭) 등으로 이를 서촌오사정(西村五射亭)라 하였다.
나라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서 울분에 싸인 고종은 그 울분을 달래고 세상일을 잠시라도 잊고자 황학정에
나와서 활을 쏘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사정 건물에 고종황제의 어진을 모셔놓았고, 현재 황학정의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이다. 황학정이란 말은 왕이 활을 쏘는 모습을 표현한 구절에서 유래한 것으로 <黃衣挽弓
彷彿鶴之舒翼>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인왕산
인왕산(仁王山 해발338m)은 서울의 서쪽에 있는 산으로 화강암이 노출되어 있고 산세가 웅장하다. 풍수적으로
보면 祖山인 북한산에서 主山인 북악산으로 연결되며 좌청룡인 낙산, 우백호인 인왕산의 형상을 이룬다. 그래서
인지 이 산에는 호랑이가 많이 살고 있어서 태종5년에는 경복궁 내전까지 들이 닥쳤고, 연산군 11년에는
종묘에 침입하는 등 민가의 피해도 많았다 한다.
인왕산은 태조 때에는 서봉, 서산으로 불리었으나, 광해군 때에 인왕사라는 절이 있어서 인왕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일제가 일본이 왕을 누른다는 뜻으로 日자를 덧붙혀 仁旺山이라 고쳤으나, 조선 후기 화가인
정선이나 강희언의 산수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의 표기에 따라 본래 이름인 仁王山이라 부르고 있다.
인왕산 치마바위
경복궁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병풍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고 그 밑에 치마바위가 있으니 이 치마바위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조선조 제 10대 임금이었던 연산군의 폭정으로 중종반정이 일어난다. 반정이 성공하여 중종임금이 즉위하자
왕비가 된 분이 단경왕후이니 이 분은 바로 연산군의 추종자였던 신수근의 딸이다. 신수근은 중종반정의
반대세력으로 반정과정에서 역적으로 참살되었으니 왕후는 역적의 딸인 셈이었다. 반정공신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사사로이는 왕비의 친정아버지를 죽인 장본인들이 아닌가. 후환이 두렵기도 하였을 것이다.
역적의 딸을 왕비로 삼을 수 없다는 공신들의 끈질긴 요구에 결국 중종임금도 어쩔 수 없이 왕후 신씨를
폐위시켜 사가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왕후로 책봉 된지 볼과 7일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중종임금과 폐비
신씨는 10여년을 두터운 정으로 함께 살아온 부부가 아니던가. 그들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부부였기에
신하들의 강요에 못 이겨 헤어졌지만 그 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중종임금은 종종 경회루에 올라
폐비 신씨가 살고 있는 인왕산 쪽을 바라보곤 하였다는 것이다.
이 소문을 들은 폐비 신씨는 인왕산에 올라 병풍바위 밑에 솟아 있는 바위에 궁중에서 입던 치마를 걸쳐놓아
왕이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에 치마를 펼쳐 놓았다가 저녁이 되면
거둬들이면서 서로간의 사랑의 정을 주고받았다고 하니 얼마나 애달픈 사랑의 이야기인가.
이때부터 이 바위에 치마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한 나라의 주인이었던 왕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 인왕산 치마바위 이야기다.
창의문
조선왕조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태조(太祖) 4년(1395)부터 도성(都城)쌓기에 들어갔다. 도성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과 그 사이사이에 4개의 작은 문을 만들었다. 성곽의 길이는 당시 영조척(營造尺)으로
59,500척(약 17km)에 달했다.
창의문(彰義門)은 성곽의 서북에 자리하였는데, 오늘날 종로구 청운동에서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자리한지라 지금도 이 고개를 '창의문 고개'또는 '자하문(紫霞門) 고개'라 부르고 있다.
북문 격인 숙청문과 서문 격인 돈의문 사이에 자리한 창의문을 일명 '자하문'이라고 하는 것은 조선조 때 이
일대를 개성의 자하동처럼 골이 깊고 물과 바위가 아름다워 '자핫골'이라 부른데서 비롯된다.
서울에서 4개의 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그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창의문은 광희문이나
흥인지문(興仁之門:동대문)에 비해 그 규모가 훨씬 작다. 그러나 성곽을 구성하는 문인만큼 쌓아올린 축대에선
매우 탄탄한 기풍을 느낀다. 현재 창의문은 6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자동차 매연에 시달리는 숭례문,
흥인지문과는 달리 아직도 의(義)로 얼룩진 역사의 애환을 간직하고 있으니 '창의문'(彰義門)이란 '의'(義)
자 때문일까?
북악산
오후 2시 30분 마침내 북악산 정상에 도착했다. 아직 꽃이 피지는 않았지만 막 몽우리가 맺히기 시작한
진달래밭과 구불구불한 노송이 답사객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정상 부근 바위에는 30년 전 산이 폐쇄되기
전까지 등산객들이 새긴 이름과 각종 낙서가 여전히 남아있어 미묘한 느낌이 들게 했다. 정상부 남쪽으로는
청와대 내려가는 작은 오솔길도 보였다. 백두산에서 뻗은 산맥이 금강산을 거쳐 도봉, 북한산을 일으키고 다시
뻗은 남맥이 기를 모아 멈춘 곳이 이곳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뜻밖에도 무장간첩단 침투 뒤 70~80년대
운영된 대형 발칸포 진지터를 철거한 표석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지상 2층에 120평이나 되는 이 대형
시설은 2000년에야 서울시가 철거한 것으로 북악산에 얽힌 역사적 곡절을 극명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숙정문
삼청터널 위에 자리한 숙정문은 남대문·동대문·서대문과 함께 서울성곽 4대문의 하나로 속칭 북문(北門)이었다.
서울의 정북에 위치한 이 문은 처음에는 숙청문(肅淸門)이었는데 무슨 까닭인지 숙정문(肅靖門)으로 개칭되어
중종(中宗) 이후의 실록에는 모두 숙정문으로 기록되고 있다.
4소문의 하나인 창의문(彰義門)과 함께 양주(楊州)와 고양(高陽)으로 왕래하는 통로로 이용되기도 한 이 문은
서울성곽의 다른 문과 같이 태조 5년(1396)에 창건되었다. 이문은 연산군 10년(1504)에 원래의
위치에서 약간 동쪽인 지금 자리로 이건하였는데 이때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로 된 석문(石門)만 세우고
문루(門樓)는 세우지 않은 듯하다. 1975년 서울특별시에서 무너진 문루를 복원하려고 할 때 석문만 있었느냐
아니면 문루도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여러 차례 토론을 거쳐, 태조 때 문루가 건축되었다는 것을 근거로
이를 복원한 뒤 숙정문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조선 초의 기록을 보면 풍수설과 음양설에 따라 가뭄이 심하면 숙정문을 닫고, 장마가 심하면 숙정문을 열어
놓았다 한다.
한편 조선시대 이규경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의하면, 숙정문을 열어 놓으면 서울
장안의 여자가 음란해 지므로 항상 문을 닫아 두게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삼청공원
삼청공원은 경복궁 북동쪽의 북악산(北岳山) 기슭을 차지하며, 북악 동쪽 기슭의 능선을 따라 허물어져 없어진
부분을 복원한 성벽이 뻗어 내리고, 도성의 북문이었던 숙정문도 1976년 10월 복원·단장되었다. 노송을
비롯한 울창한 수림과 청계천의 상류인 삼청천의 계곡이 공원의 주된 경관을 이룬다.
골짜기의 물이 모여드는 삼청동 남동쪽의 영수곡(靈水谷)에는 병풍 같이 늘어선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에
인조(仁祖) 때의 서예가 김경문(金敬文)의 휘호라고 전해지는 ‘三淸洞門’이라는 큰 글씨가 새겨져 있다. 또
공원 안 일청교(一淸橋) 옆의 산책로 변에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와 그의 어머니의 시조를 새긴 시조비(時調碑)가
있다. 공원에는 도로가 잘 정비되어 성북동(城北洞) 쪽으로 쉽게 통할 수 있으나, 현재는 삼청동과 성북동을
잇는 삼청터널이 공원 옆으로 뚫려 있다. 이 공원의 이름은 도교(道敎)의 ‘삼청(三淸:신선이 사는 세 궁전인
太淸 ·上淸 ·玉淸)’에서 유래한다
청일집 빈대떡
특 징: 종로 피맛골에서 55년간 녹두빈대떡을 만들어 온 오랜 전통의 빈대떡 전문점. 선친의 사업을 물려받아
2대째 이어가고 있다.
스태프: 부부가 직접 서빙과 주방을 담당한다.
크 기: 지름 14cm, 두께 0.6cm
반 죽: 녹두, 양파, 양배추, 소금 약간
기 름: 돼지 비계 사용
비 법: 녹두를 직접 맷돌에 갈아 사용한다. 잘 달군 철판에 돼지기름을 적당히 두른 후 굽는다.
식 감: 돼지기름의 구수한 향과 씹으면 ‘아삭’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바삭거리는 고소함.
반찬,소스: 간장, 짭짤한 굴젓, 조개젓, 단무지
술 가 격 ; 막걸리 3000원, 소주 3,000원
주고객: 정치인, 문인이 다수. 인근 직장인
분위기: 낡은 나무 의자와 허름한 벽지가 운치 있는 곳.
좌석수: 1층 40석, 2층 30석
20자평: 돼지기름 + 녹두 + 막걸리의 환상 궁합
기 타: 02-732-2626 11:00~24:00(명절 휴무)
녹두(3장)·해물·고기 빈대떡 9000원,
교보문고 정문 건너편 버거킹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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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15 불곡산 산행기
불국산으로도 불리는 불곡산은 해발 469m로 그리 높지 않지만 '대동여지도'에 양주의 진산 으로 나와
있단다. 양주시 유양동 및 산북동의 경계에 솟아있으며 서울 근교의 다른 산과 달리 주말에도 붐비지 않아서
좋다. 산의 규모는 작으나 기암들로 이어진 오밀조밀한 산세를 자랑한다. 인근의 도봉산에 밀려 빛을 못보고
있으나 교통이 편리한데다, 봄철이면 진달래가 만발하는 산이다.
소요산까지 뚫린 지하철1호선의 주내역에서 의정부 일산을 오가는 32번 버스를 갈아타고 대교아파트 앞에
내린다. 양주손씨 선산 사이로 난 등산길을 따라 능선에 오른다. 숨차다. 진달꽃 안주로 막걸리를 마신다.
문학평론가 이어령은 얼마나 배가 고픈 민족이었으면 진달래꽃을 먹었겠냐고 헛소리 한 적도 있었지만, 여기저기서
자태를 맘껏 뽐내고 있는 진달래를 한 웅큼씩 따다가 막걸리와 함께 봄소식을 뱃속에 전한다. 술기운이 꽤
오른다.
한잔먹세그려
또한한잔먹세그려
꽃꺾어산노고무진먹세그려
이몸죽은후면지게위에거적덮혀
주리어매어가나유소보장에만인이울어예나
어욱새속새떠깔나무백양숲에가기곧가면
누른해흰달가는비굵은눈소소리바람불제한잔먹자할꼬
하물며무덤위에잰나비바람불제뉘우친들어쩌리
지천에 깔려있는 농익은 봄날에 좋은 친구들과 이 술 한잔 못 마신 친구들은 정철형님의 장진주사 마지막 연
‘하물며 무덤위에 잔나비 바람 불 제 뉘우친들 어쩌리’다.
진달래꽃 안주의 막걸리에 취한건지, 사방에 흩어진 봄날에 취한건지 취기가 온 몸을 싸하게 감싼다. 어랑~
어랑~ 어허야~ 어허허어허 디이야~
등산로를 따라 오르니, 로프가 3개 매달려 있는 30여미터의 암벽이 발길을 가로 막는다. 임꺽정봉이다. 이
암벽을 오르면, 그 너머에 10여미터의 로프 직벽이 또 있단다. 위험해 보인다. 호연이와 강복이는 로프를
타고 올랐고 나머지는 옆길로 우회한다.
다음 봉우리는 상투봉. 말이라는 게 참 우습다. 상투를 잡았느니, 상투를 잡혔느니, 상투가 되기 전에
팔아야한다느니가 아니고 오늘은 그냥 상투봉에 오른다. 산봉우리에서 내려다보니 불곡산은 능선이 복잡한 산이
아니라 360도 전시야가 탁 터져 양주시와 의정부시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점심을 먹는다. 윙윙대며, 갑자기 헬리곱트가 날아온다. 아까 우회한 임꺽정봉에 아래위로 주홍색 옷을 입을
구조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이고, 들것에 누군가가 실려 헬리곱트로 올라간다. 산의 규모에 비해서
암릉이 많아 아기자기하고 길게 이어지는 바위산이라 매우 스릴도 있고 재미도 있지만 그 만큼 위험한 산이다.
다음은 상봉. 멀리 저 아래 양주산대놀이전수관의 둥그런 지붕을 오른 쪽으로 끼고 평탄한 산길을 따라
하산한다. 윙윙 헬리곱트 소리가 난다. 두 번째다. 또 사고가 났나보다.
양주시청에 도착하니 3시 반. 물러 터진 총무바람에 쪼그라든 산우회비를 걱정하여 오늘은 뒤풀이 없이 회비를
걷는다.
1만원씩을 희사하신 분들은 원호연, 김임섭, 도근회, 백금석, 박홍식, 김강복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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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22 총산 북한산 산행참가기
4호선 전철 수유역에서 갈아탄 120번 버스를 종점에서 내리니 9시 45분. 집합시간인 9시30분에 벌써
15분이나 늦었다. 불이 나게 길을 건너 도선사 가는 택시를 합승한다. 요금은 1인당 1500원. 바쁜
와중에도 택시기사와 이런저런 궁금한 걸 물어 본다. 우이동 버스종점에서 도선사 간에 합승을 전문으로 하는
택시친목회 같은 것이 있어서 친목회에 가입안된 택시는 이 구간에서 합승 영업을 하지 못하게 제재하는
눈치이고, 날짜별, 오전 오후별 순번 같은 것이 있어서 날씨가 궂든 주중이든 상관없이 이 구간을 의무적으로
운행해야한단다. 말이 좋아 친목회지 아주 무지한 배타적 텃세로 그야말로 불루오션 영업이다.
할렐루야기도원 앞에서 택시를 내린다. 요정정치가 한창이던 시절 선운각이라는 고급요정이던 자리다. 내놓으라
하는 장안의 소리꾼들을 초빙하여 선친의 환갑잔치를 올려 드렸던 곳이기도 하다. 그 잔칫날 아마 백금석군이
왔었을 게다. 후에 춘하추동이라는 대중음식점 같은 걸로 바뀌더니 이제는 할렐루야기도원이다. 세월은 흘렀고
사람도 바뀌어 돌아가신 선친의 바로 그 환갑의 나이에 이제는 내가 부지런히 잰 걸음으로 옛날의 선운각 아니
할렐루야기도원으로 들어선다.
접수부에 참가신청을 하고 졸업회수와 이름이 적힌 스티커를 받아서 모자챙에 붙인다. 다음 테이블에서 기념품
추첨을 위한 이름표를 받아 반을 잘라서 추첨함에 넣었다. 다음은 모래주머니를 받을 차례. 모래주머니를 보는
순간 오늘 산행을 빡세게 시키려는가보다 했더니 그게 아니라 산행 중에 길이 패인 곳이 있으면 이 흙으로
메우고, 빈 자루는 다목적 방수주머니이니 요긴하게 쓰란다. 그렇다면 기꺼이 한 자루를 받아 든다. 묵직하다.
흰색 티셔츠, 묵, 양갱, 등산용 타올, 판초우의도 하나씩 받아 양손에 쥐고, 우리 동기들이 모인 곳으로
간다. 원호연, 도근회, 백금석, 박훈신, 이춘호, 문시헌, 김창민, 최홍군이 먼저 와 있었고, 나 보다
박태국군은 조금 더 늦게 왔다.
산행을 시작하라 마라 주최 측의 안내는 없었고 각 회기별로 자유스럽게 산행을 시작한다. 소귀천계곡에서
대동문을 통과하지 않고 가파른 지름길로 식후 행사장인 북한산장으로 오른다. 아래에서 받아 넣은 모래주머니
때문에 배낭이 묵직하다. 분홍빛 진달래꽃은 여기저기에서 가는 봄을 아쉬워했고, 여염 시내보다 늦게 핀 벚꽃은
지나는 바람에 연분홍빛 꽃잎을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다.
북한산장에 도착하니 이른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밥자리는 이미 다른 횟수에서
차지해버렸고, 웬 아주머니 두 명이 앉아있는 넓직한 에이급자리에 어지간하면 같이 식사하자고 너스레를 떨면서
우격다짐으로 우리 밥자리를 정한다. 바로 옆 길 건너에는 한 50명은 됨직한 인원들이 모인 50회 후배들이
왁자지껄했고, 앞쪽 건너편에는 30 몇 회인가 깃발아래 30명은 됨직한 선배들이 식사중이다. 우리 41회는
10명밖에 안 되는 초라한 인원이지만 그래도 41회산우회의 깃발을 힘차게 내다 걸고 옹기종기 모여 도시락을
꺼낸다.
식사를 끝내고 식후 행사장으로 모두 모여 앉았다. 주최 측에서 금년도 행사 계획에 대한 안내, 묵이니,
수건이니 물품을 협찬한 동기에 대한 감사, 이어서 최고령 참석자인 20회 선배님의 소개, 최연소 참석자인
70회 후배의 소개 등을 거처, 기수별 기념품 추첨이 시작되었다. 먼저 품목과 개수를 알려주고, 커다란
프라스틱 사탕 그릇쯤 된 곳에 담겨진 주황색 탁구공을 꺼내서 쓰여진 숫자의 횟수가 당첨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우리 기는 피자티켓 5장이 당첨되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36개의 탁구공 중에 다 골라가고
마지막 남은 공이 41회였으니, 당첨된 게 아니라 당첨 당했다고 해야 분위기를 옳게 전달하는 거다.
이제 개인별 기념품 추첨순서. 들어내지는 않았지만 내심 은근히 기대되는 순서이다. 두 번째인가 3번째
추첨에서 코어텍스보다 더 발전된 원단을 사용하여 소비자가격 40만원짜리이고 아무개 우이동 등산품 매장에서
협찬을 했으며 수량은 2개라고 연두색으로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등산용 자켓을 사회자가 높이 쳐들었다. 이때
우리 김창민교수 ‘에이 이런 거 타봐야 술값만 내고 안 타는 게 나아’ 그러고 있는데, ‘41회 김창민
당첨’ 우엑 이게 무슨 소리야. 예의 우리 김창민교수 입이 찢어져라 미소를 머금고 후다닥 튀어나갔다.
일찍이 어떤 선각자가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 설파하지 않았던가. 이 말을 뒤집으면, 남의 행복은 나의
불행이라는 얘기인데, 아이구 배 아파라. 그래서 이 이후의 일, 추첨은 물론 산행에 대하여 더 쓸 기분도
없지만, 한잔 얻어먹었으니 할 수 없이 그 이후의 일을 간단히 쓰자면, 창민이를 잘 보호하자커니, 아니 도망
못 가게 잘 잡으라커니, 한 4차는 베껴 먹자커니 웃고 떠들면서 위문을 거처 하산 길에 그 옷 협찬가게를
들려 가격을 알아본 결과 264,000원. 깔끔한 두부전문집에 들려 두부전골과 빈대떡을 안주삼아 소주와
맥주를 얻어 마시고 얼큰하게 취해 유쾌한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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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29 운길산 산행기
원호연, 김임섭, 백금석, 박홍식, 장웅태, 원정상, 오재홍, 이춘호, 박래원,
방석순, 최영순
운길산을 오르자고 덕소역 앞에서 탄 버스를 송촌리에서 내린다. 길을 건너 전원주택단지 사이로 난 길을 간다.
날씨는 화창하고, 여기저기 피어 있는 배꽃이며, 살구꽃 개복숭의 꽃이 곱다. 바람은 잔잔하지만 가끔 부는
바람에 옷깃은 나부끼고 상쾌한 기분이다. 올 봄에 심었을 게 분명한 감자 싹이 제법 자랐고 고추밭도 지나고
가지밭도 지나 붉은 색이 요염한 명자나무를 끝으로 전원단지를 벗어나 수종사 1100m, 운길산 2200m라고
쓰여 진 이정표를 만난다.
걸어가면서 경사도를 대충 계산해본다. 운길산은 높이가 614m이니 이 높이를 2200m거리로 올라간다면 높이
300m를 1000m에 오르는 셈이니 경사도는 30%. 30%? 깜짝 놀라 다시 계산해 봐도 30%. 현재
높이를 후하게 100m로 잡으면 대략 25%의 경사도다. 산에 다니다 다니다 오늘은 25%나 되는 급경사를
2200m나 가야한단다. 꽤나 빡센 산행길이 될게 틀림없다.
예상대로 평지라고는 조금도 없이 계속 급경사로 이어진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이 산의 임도는 여니 산의
임도와 다르다.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부터 산 정상을 향해 일직선으로 불도저가 쓰윽 깍아만 놓고 지나갔나보다.
길은 좌우 산등승이보다 움푹 파져 낮았고 초벌이후 아무손질이 없었는지 돌멩이니 자갈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 길을 따라 걷다가 숨이 차면 쉬고 또 숨이 차면 쉬고를 반복하다가 헐떡이는 숨소리가 거의 하늘에 닿을
즈음에 수종사라는 절을 만난다.
수종사는 절은 오늘 처음 들어본 절이라 그저 그런 절이려니 했더니 그게 아니다. 규모는 작지만 500여년의
역사를 지닌 고찰이다. 옛날 세조가 금강산 구경을 다녀오다 이수두(二水頭:兩水里)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난데없는 종소리가 들려 잠을 깬 왕이 부근을 조사하게 하자 뜻밖에도 바위굴이 있었고, 그
굴속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울려 나왔으며, 굴속에는 18 나한(羅漢)이 있어 이곳에
절을 짓게 하였는데 그 절이 수종사(水鍾寺)란다. 마당에는 그때 세조가 심었다는 수령 500년짜리의
은행나무가 둘레 7m의 위용을 뽐내고 있고, 대웅전 앞에서 탁 트인 아래를 내려다보면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가 훤히 한눈에 들어오는 경치가 빼어난 절이다.
水자가 들어간 절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종사의 약수는 유명하고 이 물로 끓인 차는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다성(茶聖)으로까지 불리는 초의선사까지 칭찬하였다는데 절터 한켠에 있는 약수터는 주위가 협소하고
수량이 쫄쫄거리는데 기다리는 사람조차 많아 물 맛 보기를 포기한 것이 아쉽고, 유명한 수종사의 차 맛을
보라고 무료 다실도 운영하고 있다는데 이렇게 역사적으로 유명한 차 맛인지 미처 몰랐던 우리는 그냥 지나쳐
버린 것 또한 못내 아쉽다.
이즈음에서 생전에 두물머리의 뱃길을 오르내리며 수종사를 즐겨 찾았다는 다산이 수종사를 읊은 시나 한수 읽고
가자.
봄날 수종사에 노닐다.
고운 햇살 옷깃에 비쳐 밝은데
옅은 그림자 먼 밭에 떠있다.
배에서 내리니 자유로워 기분 좋고
골짝에 들어서니 그윽하여 즐겁구나
바위 풀 교묘하게 단장하였고
산 버섯 둥글게 불끈 솟아나왔네
아스라한 강변에 어촌이 보이고
위태로운 산머리엔 절간이 붙어 있다.
생각이 맑아지니 사물이 경쾌하게 여겨지고
몸이 높아지니 신선이 멀지 않구나
안타까움은 뜻 같은 길손이 없어
현묘한 도 찾는 토론 못 함이로다
(1782년 작, 여유당집 권2 수록)
수종사에서 임도는 끝났고 이제 부터는 본격적 산길. 수종사의 표고가 480m정도였으니, 130m여 미터를 더
올라 운길산 정상에 도달했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멀리 두물머리가 보이기는 했지만, 아래쪽 나뭇가지에
가려보였다. 정상에는 예의 운길산 614.2m라는 표지석이 있었고, 보통은 산 정상에서 기념촬영들을 했지만
급경사길을 올라오느라 진이 다 빠진 우리는 사진 찍는 일도 잊었을 게다.
다음 목표인 적갑산 쪽을 향해 가다가 적당한 자리에서 점심을 먹었고, 날카롭게 깍아지른 돌팍 낭떠러지 길들을
소주에 공부가주에, 마가목주에, 구기자주에 얼큰하게 취한 몸을 이끌고 조심조심 내려갔다. 오르고 내리고를
연속하여 이름 없는 봉우리를 세개인가 네 개인가를 더 넘어서 조곡리 가는 길, 적갑산 가는 길, 약수터를
지나 도곡리 가는 길로 갈라지는 오거리에 도달했고 넓적한 이정표 앞에서 한참을 쉬었다. 아직도 힘이 남은
몇몇은 적갑산을 둘러서 도곡리로 가겠다고 하고 나머지는 도곡리로 내려가겠다고 한다. 곧장 가겠다는 사람이
많으니 흩어지지 말자고 모두 도곡리로 곧장 내려가기로 한다.
한 시간에 한대씩인 덕소행 버스를 탄 건 5시 15분. 덕소에 내려 덕소맛깔촌인가 뭔가 하는 한가한 식당에서
감자탕과 비슷한 뼈다귀전골을 안주 삼아 소주도 맥주도마시고 건더기를 건저 먹고 남은 냄비 진국에 밥을 비벼
저녁까지 배부르게 먹고 바깥을 나섰더니 시원한 공기가 온몸을 스친다. 세상은 이미 실내보다 바깥 공기가
시원하고 상쾌한 계절로 바뀌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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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06 청계산 산행기
김임섭, 박효순, 김종기 백금석, 박래원, 박홍식, 원정상, 이우철, 방석순, 유희봉, 박태국, 유능화 등
12명.
4호선 대공원역 2번 출구 잔디밭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조금 늦는다고 연락해온 유능화군을 기다린다. 입심
좋은 김종기군, 어제 저녁에 봤다는 텔레비전 프로로 열을 올린다. 코끼리 잠지가 무지하게 커서 몇
십kg이라는 둥, 코끼리가 사정하면 1000cc라는 둥, 고래의 불알이 1톤은 된다는 둥 전철역 앞
잔디밭에서 믿거나 말거나한 거대 동물들의 짝짓기 행태로 웃고 떠들었다.
주섬주섬 대공원 오른쪽에 있는 가게를 끼고 산길로 들어선다. 대공원의 울타리를 따라 난 길이다. 1주일 밖에
안됐는데 지난주와는 확연히 다르게 싱그러운 실록이다. 전철역 잔디밭에서 입심으로 양기를 다 써버린 탓인지,
회장 원호연군의 불참 탓인지 옛골은 무슨 옛골. 대공원으로 곧장 가서 놀다가자고 여럿이 농담반 진담반 보채며
작은 매봉을 향하여 오른다. 청계산은 큰 매봉과 작은 매봉으로 매봉이 둘이다.
억지로 꾸역꾸역 올라 온 곳이 작은 매봉 369.3m. 그래도 점심은 먹고 대공원으로 가야 할 거 아니냐고,
청계사, 이수봉쪽 길로 들어선다. 등에 땀은 차오르고, 적당히 덥다. 한잔에 2천원이라 쓰인 막걸리 주보가
오늘따라 크게 눈에 들어온다. 저걸 한 잔 재끼고 갈까 그냥 갈까 마음이 혼란스럽다. 아까 막걸리를 사
넣자는 걸 무겁다고 그냥 가자고한 게 후회스럽다.
이쪽 능선에는 12명이 호젓하게 앉을 밥자리도 궁하다. 헬기장을 지나, 조금 넓어 뵈는 길 한쪽에 각자
도시락을 푼다. 새로 신방을 차린 박효순군의 반찬이 제일 걸다. 5찬인가 6찬의 반찬에 표고버섯도 그냥
표고버섯이 아니라 계란 옷을 입혀 기름에 튀긴 표고버섯이다. 뜨끈한 북어국을 보고 다들 한 마디씩 인사를
건낸다.
박래원군은 멕시코의 데낄라주를, 8박9일로 실크로드 돈황을 갔다 온 유희봉군은 죠니워커 블랙 1리트를
꺼낸다. 식후 디저트는 돈황에서 갖고 온 말린 청포도, 말린 매실까지 나누어 먹었다. 오늘의 오찬은 과히
범세계적이다.
점심은 먹었고, 데낄라에 죠니워크를 섞어 마셨으니, 적당히 알딸딸하다. 밥자리를 주섬주섬 챙기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들어 눕는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상랑살랑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초록색으로
멋지다. 한 한 시간을 그러고 있었나, 이제 대공원후문을 향하여 출발이다. 대공원 후문으로 들어선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후문은 무슨 후문, 대공원을 둘러친 가시철망에 뚫린 개구멍으로 그냥 쑥 들어갔다.
사람들이 많다. 어린이날의 다음 날이어서 그러려니 하고 생각해본다. 곰사도 지나고, 맹수사도 지나서 아까
김종기가 말한 코끼리의 거시기를 확인해볼 참으로 물어물어 코끼리사 앞으로 왔다. 아시아코끼리는 약간
푸른빛이고, 아프리카코끼리는 누른빛이라는 걸 오늘 처음 안다. 멀리 있는 놈은 멀어서 안보이고, 가까이 있는
놈의 사타구니를 본다. 거시기가 없다. 암놈이다.
한 40분을 사람사이를 걸어 내려와 대공원정문을 나섰고, 이삼십개의 메뉴가 걸린 정문 앞 식당에서 생맥주를
마시고 떠들다가 아직도 훤한 이른 저녁에 각기 왔던 방향으로 흩어져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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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20 오봉 산행기
구파발에 9시 25분에 도착하여 송추유원지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이미 30여분동안이나 줄을 서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린다. 그 동안 34번 시외버스는 2번 왔고, 704번 버스는 사람으로 꽉차있어 더 태울 수가
없는지 구파발 정거장은 그냥 바이패스다. 그나마 줄이 줄어드는 것은 여기가 시발역인 720번 북한산성행 버스
때문이다. 10시가 넘었다고 회장으로부터 재촉 전화는 오고 줄은 쉽게 줄어들지 않고 짜증이 엄청 나있는데,
박효순과 박훈신이 보인다. 부근의 다른 등산객 한명과 택시를 타기로 한다. 15,000원이란다. 일인당
3,000원씩 12,000에 가자고 했더니 아주 쌀쌀맞게 딴 데 가서 알아보란다. 하는 수 없이
15,000에 택시를 탄다.
택시기사에게 이런저런 말을 시켜본다. 9시부터 11시까지 2시간동안에 8왕복을 하며, 이 일을 7년 동안
하고 있는데 벌어서 집도 샀단다. 그건 그렇고 이 양반의 운전 스타일은 신호무시 차선 무시, 중앙선침범,
고속도로도 아닌데 시속 120Km 고속질주다. 나와 효순이 그리고 훈신이는 영화제목 그대로 총알을 탄
사나이들이다. 아무 소리도 못하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눈만 껌벅거린다. 하루가 지난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어~휴, 모진 목숨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송추 유원지 앞에 예의 총알택시를 내렸더니 원호연이 기다리고 있다. 나머지 일행은 먼저 출발했단다. 택시
안에서 지금 막 버스를 탔다고 전화가 온 이승배를 기다린다. 생각보다는 승배가 빨리 왔다. 줄이 너무 길어서
적당히, 소위 말해서 새치기로 얼른 버스를 탔단다. 역시 세상은 요령껏 살아야 하나보다. 오늘 우리 일행은
14명이라고 호연이가 일러준다.
원호연, 백금석, 유희봉, 문시헌, 박효순, 박홍식, 김임섭, 방석순, 이승배, 이춘호, 장웅태, 박훈신,
최영순 부부 이상 14명.
북한산유원지 초입에는 전에 없던 고가도로가 건설되고 있었다. 사패산 터널과 이어지는 도로다. 날씨가 얄밉도록
화창한 늦은 봄날이니 등산객도 많다. 유원지로 가는 길에서 오른쪽으로 개울을 건너 옛 오봉매표소를 지나
여성봉가는 길로 들어선다. 송추 남능선 시발점이다. 지원센터에서 여성봉까지는 2.1㎞. 능선을 따라 오른다.
좌측으로 송추 북능선과 그 너머 사패산이 보이고, 도봉산 최고봉인 자운봉과 만장봉, 선인봉이 잇따라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북한산 상장능선과 백운대, 인수봉 등이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좌우로 펼쳐지는 웅장한 산세와
시원한 바람 그리고 한 잔의 막걸리.
여성봉 바위 가운데를 통과하여 여성봉에 오른다. 누가보아도 여지없이 여자의 은밀한 부분이다. 여성이니
남성이니 하는 단어는 일본에서 들어 온 단어이니 일본이 들어오기 전에 불렸던 순수 우리나라말의 봉우리 이름이
궁금해진다. 이 글을 쓰는 아침에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져서 옛날에는 뭐라고 불렀는지 백방으로 찾았으나,
여기에 대한 언급은 게 없다. 옛날에는 이 봉우리의 이름이 없었던 걸까?
봉우리에 오르는 길이 미끄러워서 위험하다고 배금석, 박홍식 두 사진사가 출사를 거부하여 사진을 찍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1.3km를 더 걸어 오봉에 다 달았다. 오봉은 멀리서 보이는 대로 다섯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일
높은 곳이 일봉이고 그 다음이 이봉, 삼봉 등의 순서로 이름이 붙어있다. 높이 또한 일봉이 제일 높고,
순서대로 낮아서 다섯번째 봉인 오봉이 제일 낮다. 일봉을 제외하면 저마다 크다란 바위 하나씩을 이고 있어서
자연의 묘한 힘을 느끼게 한다. 일봉은 아무나 갈 수 있고, 조금 담력 있으면 이봉의 아래까지는 갈 수
있지만 이봉의 꼭대기나, 나머지 봉은 암벽장비를 갖추어야 갈 수 있다. 아마 우리 일행 중에서 호연이만이
다섯 개의 봉을 올라보았으리라.
헬기장을 지나니 이제부터는 하산길. 12시 반이 조금 지났을 무렵 오봉샘터에 밥자리를 정하고 모두들
둘러앉았다. 요즈음의 점심시간은 성찬이다. 이번만 해도 영순이 부부가 주말 농장에서 키웠다는 각종 쌈 야채를
직접 담았다는 된장과 함께 듬뿍 갖어 왔고, 웅태는 아이비 대신에 쑥개떡을, 춘호도 찍어 먹을 꿀과 함께
쑥개떡을 갖고 왔다. 새 신랑 효순이는 여전히 반찬이 화려하다.
오늘 점심의 중심은 뭐니 뭐니 해도 승배가 갖고 온 이태리산 적 포도주다. 뿐만 아니라 배낭에서 깨질까
두툼한 겨울 장갑으로 싼 크리스탈 포도주 잔도 2개를 꺼낸다. 승배는 6월에 미국 샌프란에 살고 있는 딸을
좇아 이민을 간단다. 아마도 당분간은 오늘의 산행이 마지막이란다. 돌아가면서 크리스탈 포도주 잔으로 이별주를
마신다. 신록이 우거진 봄날,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에, 친구들과의 헤어짐이 섭섭해서 마치
조홍시가의 감처럼 싸온 투명 크리스탈잔과, 그 잔 안에서 울렁거리는 포도주의 붉은 색이 고와서 마셔버리기에는
정말 아깝다.
식후 잠깐씩들 눈을 붙였고, 내려오는 길에 계곡에서 탁족도 하면서 도봉산 입구로 내려왔다. 시헌이는 성당에
가야한다고 먼저 갔고 13명이 남았다. 이쪽으로 내려오면 그 동안 들렸던 이모네 포장마차가 있지만 식상한
모양이다. 이집 저집을 기웃거리다가 다송이라는 집으로 들어간다. 1층은 13명이 앉을 자리가 없었고 반
지하에는 냄새가 난다는 춘호의 말에 따라 등산화를 벗고 2층에 둘러앉았다. 메추리구이, 파전, 도토리묵을
생맥주 안주로 시킨다. 첫째 잔은 당연히 이민가는 승배를 위하여 건배한다. ‘승배야 잘 가’가 아니고 승배야
그래 잘 갔다 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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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17일 팔봉산 산행기
교대역 9번 출구를 나와 외환은행 앞으로 간다. 6시 50분인데 1호차
원호연기사, 2호차 박홍식기사, 3호차 박래원기사가 애마를 대동하고 벌써 와있다. 일산에 사는 도근회는
교대역까지 소요시간을 잘못 추정하여 30분 정도 늦을 것 같아 불참한다고 통보가 왔고, 김강복은 어릴 때
소풍가는 기분이라 밤잠을 설치다가 새벽에 깜박 잠이 들어서 시간에 맞추어 갈 수 없노라는 통보고, 자리가
없으면, 자기 차라도 몰고 오겠다던 김창민교수는 마누라에게 차를 징발당해 올 수가 없다는 연락이다. 이왕
까발리는 김에 오재홍군은 교대역에서 응가 중이라 조금 늦는다는 연락도 왔다.
7시 15분쯤이나 되었을까 홍천을 향해 출발이다.
1호차에는 원호연, 오재홍, 원정상, 이춘호가 탔고,
2호차에는 박홍식, 방석순, 백금석, 김임섭이 탔고,
3호차에는 박래원, 이상철, 김종기가 탔다.
등산팀이 산행을 끝내고 내려오면, 민물고기 튀김을 먹이겠다고 눈물겨운 정성으로 토요일 저녁에 견지낚시대로
무장하고 홍천강에 미리 가 있는 친구들은
분당선수 : 문시헌기사, 유희봉, 이우철, 장웅태
온수동선수: 최영순 부부
이른 아침 시간임에도 홍천 가는 길에는 관광버스와 승용차로 꽤 분주하다. 중간에 푸른잔디인가 뭔가 하는 곳의
휴게소에서 몇몇이 콩나물 해장국으로 요기를 하느라 잠깐 섰다가, 홍천으로 가는 국도에서 비발디콘도를 통과하는
지방도를 거처 팔봉산 입구 매표소에 도착한 시간은 8시 30분경이었고, 금석이가 새로 장만한 휴대용
네비게이트에 의하면 교대앞 출발지로 부터는 93km 거리였다.
팔봉산 매표소라, 매표소? 무슨 뚱딴지같이 매표소라니,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의 입장료가 없어진지도 꽤
됐고, 팔봉산에 무슨 사찰이 있다는 얘기도 없었는데 입장료라니 이게 무슨 해괴한 이바구야? 하지만 어쩌겠는가
입장료를 내야 등산을 할 수 있으니, 1인당 1,500원씩과 차량주차비 1대당 3000원씩을 별로 유쾌하지
못한 기분으로 내고 시골 서커스 천막 앞의 매표소 같은 곳을 통과하여 팔봉산을 입장하였다.
그런데 이내 불쾌한 기분은 사라졌다. 안내 표지판을 따라 1봉으로 오르는 소롯길을 들어섰더니, 크고 작은
나무들이 빽빽이 울창하여 하늘을 가리고, 그 하늘을 가린 숲 사이로 터널같이 이어진 등산로는 철도 침목을
잘라서 크게 S자로 그리며 얌전하게 잘 다듬어져 있어서 주위가 열대식물만 아닐 뿐 연전에 싱가폴에 갔을 때
들렀던 싱가폴 야간동물원의 숲 속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길이 얼마나 이쁜지 내 나이가 청년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비 오는 날, 이쁜 아가씨와 드라이브해 와서 바로 이 소롯길에서 좌우 눈치를 살핀 후, 살짝 우산으로
가리고 도둑 뽀뽀라도 해보고 싶은 그런 섹시한 길이었다.
얼마 올라 온 것 같이 않은데, 팔봉산 1봉. 섹시한 숲 터널을 지났고, 2봉으로 바로 올라가는 갈림길도
지나, 철판으로 만든 발판도 올라섰고, 밧줄로 의지하여 몇 개의 큰 바위를 올랐더니 제법 커다란 중돌에
1봉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봉우리에 올라서니, 동쪽으로는 비발디콘도 쪽으로 뻗어있는 신작로가
들녘사이로 이쁘고, 북쪽으로는 홍천강이 구비처서 돌아 나가는 게 매우 한가롭다.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2봉으로 향한다.
2봉을 올라서니 바위돌 위에 삼부인당이라고 한 칸짜리 당집이 있었다. ‘팔봉산 2봉 정상에 위치한 이 당집은
3부인(이씨, 김씨, 홍씨)신을 모시는 곳으로 지금부터 400여년 전인 조선 선조(1590년대)때부터 팔봉산
주변 사람들이 마을의 평온을 빌고 풍년을 기원하며 액운을 예방하는 당굿을 해 오는 곳이다. 팔봉산 당산제는
지금까지 유일하게 전승되어 오는 부락제로서 매년 음력 3월 보름과 9월 보름에 전통적인 굿과 제사를 지내면서
나라와 백성이 평안하고 관광객이 산과 강에서 무사안녕하기를 축원한다. 팔봉산 굿놀이는 칠성과 산신이라고 하는
두명의 부인 신을 모시는 3마당으로 되어 있는데 팔봉산 당굿을 보면 무병장수하고 각자의 소원이 성취된다하여
도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굿놀이를 보러온다.’라고 안내판에 쓰여 있다.
오른쪽으로 늘어진 밧줄에 매달려 깍아지른 듯한 절벽을 오르면 팔봉 중에서 제일 높은 3봉이고, 3봉은 8개의
봉을 대표하는 봉이라 여늬 봉과는 다르게 팔봉산 302m 홍천군이라 쓰인 커다란 표석이 있었다. 봉우리에
올라서니 1봉에서 보는 경치와는 다르게 시야가 확 트여서 저 아래에 홍천강이 북쪽에서 제8봉을 휘감아 돌아
남쪽으로 빠져나가는 절경이 펼쳐있고 홍천강 위로 가로 질러 놓여진 다리가 성냥곽처럼 조그맣다. 강 가운데에는
견지낚시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도 여럿 보이는데 문시헌을 위시한 우리 낚시꾼들은 어디쯤에서 낚시를 하고
있을까?
3봉에서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철계단을 올라서면 막다른 곳에 높이 5~6m는 됨직한 비좁은 바위 틈새가
위로 향해 있고 그 끝에는 해산굴이라고 하는 작은 구멍이 있다. 구멍이 작아서 문시헌 정도만 되어도 통과할
수 없어 보였다. 배낭을 먼저 올려 보내고 두 팔을 손 들어 자세로 한 다음에 몸을 구멍에 밀어 넣으면,
뒷사람이 밀어 올려주거나, 아니면 위에서 두 팔을 잡아당겨 끌어올리는 식으로 한사람씩 빠져나간다. 이
해산굴을 빠져 나온 사람들은 잠시 멈추어 이제 막 빠져나오는 사람을 향해 ‘이제 머리가 보입니다. 힘줘,
힘줘’라며 놀리기도 하고, 남자가 빠져나오면, ‘아이구 고추네요’, 여자가 나오면 '공주님을
출산하셨습니다‘라고 놀리면서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서로 처다 보며 히히득거리는 재미나는 곳이었다.
재미있는 4봉을 지나, 5봉의 넓적한 바위 위에서 원호연회장 특허품인 살얼음이 동동 뜨는 PET병 맥주를
2병이나 해치우고, 막걸리도 서너병을 비우고, 땀도 식히고, 수다도 떨고 영등포 양평동에서 버스3대로 왔다는
산사랑산악회 아줌마들과 농담도 주거니 받거니 하며, 6봉, 7봉을 올랐었다. 이제는 마지막 8봉을 오를
순서. 8봉은 암릉을 타고 오르기도 위험하지만 내려갈 때는 급경사의 암벽을 로프를 잡고 내려가야 하며 발을
붙일 곳도 마땅하지 않은 구간이 많으니 경험이 많은 등산객이 아니면 등반을 피하라는 취지의 경고판 앞에서
몇몇은 8봉을 포기하고 바로 하산 길로 갔고 나머지는 바위 돌로 올랐다. 경고판에는 위험하다고 잔뜩 겁을
주었지만 지나온 다른 봉에 비하여 별로 더 위험한 것 같지는 않았다.
8봉에서 급경사 내리막길을 밧줄과 철사다리 및 철판 발판을 의지하여 내려오면 바로 강가의 자갈밭이다. 이제
산을 다 내려 온 것이다. 여기서 강을 따라 20여분 거슬러 올라가면 아까 우리가 들어온 매표소가 나오는데
이 길도, 강물이 깎아 들어간 절벽에 좁은 외 쇠다리를 질러놓아서 어깨 높이에 늘여놓은 밧줄을 붙들고
줄타기하듯 조심조심 건너야 하지만 강물이 많이 불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위험할 것도 없이 매표소에 닿았다.
매표소에는 영순이가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영순이의 안내로 한 10분쯤 차를 타고 이리저리를 돌아나가서 문시헌 일행이 낚시하는 곳을 지났고 이번에는
춘호의 안내로 아스팔트길이 끊어진 곳 까지 더 들어가서 등대라는 구멍가게를 겸한 매운탕집으로 갔다. 민물
잡고기 매운탕 세 냄비를 시켜 놓고는 수돗가에서 세수도 하고 발도 닦고, 춘호는 쉬원하게 등물까지 했다.
수돗가에 있는 앵두나무에서 채 익지도 않은 앵두도 따먹고, 아기배가 달린 배나무를 보고는 꽃사과나무라는 둥
돌배나무라는 둥 하면서 근 한 시간을 기다렸더니 드디어 매운탕이 나왔다.
가운데 손가락만한 이름 모를 잡고기와 수제비 덩어리가 들어 있는 매운탕인데, 전문 민물 매운탕집 보다야
못하지만 시장이 반찬 아닌가, 춘호가 갖고 온 우량애와 소주를 반주삼아 밥공기를 거의 다 비울쯤에
시끌법석하게 문시헌, 유희봉, 이우철, 장웅태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들이 닥쳤다. 오늘의 낚시 조항이 매우
좋았던 모양이다. 등산팀 먹일 거라고 아껴둔 튀김도 갖고 왔고, 매운탕에 넣을 거라고 비늘과 내장까지
깨끗하게 손질한 누치와 마자를 한 30마리는 되게 비닐에 싸서 왔다. 탁자위의 냄비에 나누어 넣고는 육수를
더 달라, 수제비를 더 달라, 공기밥, 숟가락, 젓가락, 소주잔을 더 달라고 시중드는 할머니의 혼을 쏙
빼놓고는 얼큰하게 식사를 마쳤다. 부라보콘을 한개씩 입에 물고는 여기저기 그늘을 찾아 앉으니 이거야 말로
천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시헌이 일행들아 고맙다. 덕분에 괴기 포식했다.
이제는 서울로 돌아가는 길만 남았다. 조금 늦어지면 길이 막힐 거라고 부지런히 서울로 향해 출발이다.
출발하여 얼마가지 않아 Y자 갈림길에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뒤에 들으니 시헌이 일행과 래원이 일행은
유명산의 소문난 카페에서 차를 한잔씩 마셨다고 하고 홍식이 차는 청평호반에서 콜라를 한잔씩 마셨단다. 시헌이
일행은 분당으로 곧장 갔고, 래원이 일행은 교대역부근에서 순대국으로 저녁을 먹고 소주를 4병인가 비웠다고
하고, 홍식이 일행은 서초동에서 순대국밥으로 저녁을 때우면서 소주 한 병을 비웠다고 한다. 호연이 일행은
호연이의 감기몸살 기운 때문에 금방 헤어진 모양이다.
돌아오는 전철 속에서 다음 주 산행은 우리 산우회 생일 산행인데, 무슨 선물을 해야 하는지, 또 래원이가
환갑이라고 산행 후 뒤풀이를 쏘겠다는데, 우리 산우회에서는 어떻게 답례를 해야 하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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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23 청계산산행기 (박래원 수연)
오늘은 우리 경복41회 산우회의 14주년기념 산행일이기도 하고 박래원군이
환갑기념으로 저녁 턱을 내기로 한 날이다. 지난 수요일인가부터 장마가 시작되어 서울지방은 일요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은 터라 아침에 일어나서 하늘부터 본다.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하고
햇빛이 눈부시다. 회장 원호연의 말대로 일기예보는 반만 믿어야 되나보다. 하기야 1982년 관상대에서
기상대로 확대 개편한 이후로 자기네들의 봄야유회에서도 비를 안 맞은 날이 한번인가 두 번인가 밖에 없다고
하니 한 낱 인간들이 대자연의 현상을 예보한다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인가보다.
옛골 버스종점에 도착했더니 10년 전쯤의 옛골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군사통제구역이 풀렸다는 신문을 읽고 그
다음주에 78-1번의 버스를 타고 왔었다. 그 이후 뭐가 좋았든지 예닐곱 번은 연달아 왔었던 것 같은데,
등산길이 한적하여 하산길에 계곡에서 완전히 발가벗고 목욕도 했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완전히 딴판으로
그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생등심구이집인 청계산장과 정토사인가하는 절 뿐이다. 그 당시 청계산장은
가격에 비하여 양이 푸짐해서 자동차를 타고 온 손님들이 꽤 있었고, 절은 아직 단청도 입히지 않은 그 야말로
브랜-뉴였었다. 절을 지나 얼마쯤 올라가서 있었던 보신탕집도 양재동 이쪽에서는 상당히 유명해서 넓은 마당에
일곱 갠가 여덟 개인가 되는 평상위에서 푸른 군대담요를 앞에 놓고 둘러앉아 고스톱을 치면서 보신탕을 먹었던
기억이 새롭지만 10여년 사이에 산천은 의구하지 않았고 우리도 그 사이에 환갑이라니...
버스종점에서 옛 자취를 찾느라 한 바퀴를 돌고 있었더니, 최영순부부와 유희봉, 박종원, 최홍의 순서로
23명이 모였다. 그 동안 자주 보지 못했던 박종원, 김동인, 전봉구 김세기도 왔고, 노재민도 반갑다. 조금
늦는다는 손동순을 위하여 몇 명이 종점에 남고 청계산을 향하여 출발한 시간이 10시 30분. 산우회 14주년
기념품을 나누어주느라고 번잡을 떨다보니 보통 때보다 조금 늦은 출발이다.
그 좋던 하늘이 잠깐 사이에 구름이 잔뜩 끼었다. 기상대를 조롱한 것을 하늘이 안 탓일까? 절을 통과하여
경내를 벗어나 아스팔트길 건너 약간 오른편에 있는 산길을 따라 오른다. 근자에 청계산을 자주 왔던 최영순이도
이 길은 처음이란다. 앞서 가던 팀의 뒤를 따라 무심코 들어섰더니 본대와 다른 길로 들어선 것이다. 청계산은
북한산이나 관악산처럼 등산로에 바위가 많지 않고 황토 흙으로 덮여 있어서 건조한 때에 오르면 황토먼지가
올라오고, 비가 올 때나 해토기에 오르면 질펀 거리기도 하는데, 오늘은 며칠 전에 비가 온 탓인지 길도
적당히 촉촉하고 햇빛도 없어서 등산하기에 아주 안성맞춤이다.
꽤나 올라가서 중간에 원정상군이 앞장서서 올라오는 본대를 만난다. 이제 손동순군과 합처서 모두 24명.
오랜만에 소대 병력이다. 우리 산우회에는 내부 조직으로 원씨 종친회가 있다. 회원은 원정상군과 산우회 회장을
맡고 있는 원호연군인데 짝수일에는 정상이가 회장이고 홀수일은 호연이가 회장이다. 한주 걸러끔씩 번갈아 회장이
되는 샘인데, 회원이 회장 말을 안 듣는다고 둘이서 자주 티격태격하여 회원들에게 웃음을 준다. 오늘은
짝수일이니 정상이가 회장이고 회원인 원호연산우회회장은 2주째 감기 몸살 때문에 정상 컨디션이 아니다.
설악산에서 회원들 먹일려고 취나물을 딴 것이 과로했나보다.
햇빛이야 있든 없든 여름은 여름이다. 온 몸은 땀으로 푹 젖었고, 모자 사이로 땀방울이 맺혀 안경 속으로
떨어진다. 다음 산행부터는 오늘 나누어준 기능성 런닝을 입어야겠다. 먼저 오른 친구들이 시산제를 지낸 적이
있다는 야트막한 바위 봉우리에서 막걸리가 오기를 기다린다. 매주 원회장이 제공하는 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오늘도 역시 수다 메뉴에는 전라도 신안군 출신 김선생님과 경상도 진영출신의 노씨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이번 대선에서는 우짜든지 좋은 지도자가 뽑혀야 할텐데...
매바위를 조금 못 미처 돌문바위가 있다. 이 바위를 세 바퀴 돌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닌 바위다. 바위 앞에 소속을 알 수 없는 웬 스님이 커다란 불전함을 앞에 놓고 중생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새로운 염불을 외고 있다. ‘진급발원, 건강발원, 부자발원. 무병발원, 합격발원...’. 돌문을 돌아
나온 등상객 부부가 불전함에 천원을 넣는다. 스님이 묻는다. ‘로또! 로또 발원해드릴까요?’ 상대방 부부는
말없이 매바위 쪽으로 오르는데, 그 뒤를 향하여 목탁을 두드리며 들리라고 큰 목소리로 염불을 왼다. ’로또
당첨발원, 로또 당첨발원‘.
매바위를 지나 매봉에 오르니 안개비가 내린다. 시간은 정각 12시. 청계산 매봉 582.5라고 각인된 사람
키만 한 바위를 가운데 두고 저만치 떨어져서 벤치 몇 개가 둘러싸고 있다.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아본다. 둘러
처진 울타리 밖으로 유치환의 바위라는 시가 나무에 묶인 비닐에 싸여 흰 종이 위에서 나를 본다.
바 위
유치환
내 죽으면 한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매봉에서 혈읍재 쪽으로 가다가 밥자리를 찾는다. 24명이나 되니 밥자리 찾기도 쉽지 않다. 적당한 자리에
둘러앉는다. 오늘 저녁은 박래원군이 쏜다니 반찬이 고만고만하고 태반은 김밥이다. 아까부터 어디에 있느냐고
김영걸군으로 부터 계속전화가 왔지만 결국 못 찾아왔고, 우리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민병선, 길영순,
김창민은 ‘야 여깄다’ 하며 기차게 찾아왔다. 소주도 마시고, 꼬약도 마시고, 위스키도 마시고 일어선다.
혈읍재도 지나고 자갈마당도 지나서 계곡을 끼고 난 군사도로를 따라 내려오다 계곡에 발을 담근다.
엄지손가락보다 제법 큰 고기 한 마리가 물 바닥에 몇 알 되지 않는 모래밭을 비비고 지나가니 또 다른 한
마리가 재빨리 따라간다. 자연 다큐먼터리에서 본 적이 있는 산개울에서의 물고기 산란 장면이다. 이 작은
개울에서도 생명을 낳고 생명을 키우니 자연은 새삼스럽게 위대하다. 그래 이놈들아 태어나거든 부디 문시헌군과
유희봉군을 피해야 하느니라. 그 친구들은 자네들의 명을 끊어놓는 낚시꾼들이다.
박래원군을 위한 장소인 매봉산장에 도착했더니 시간은 채 4시가 못 되었고, 입구에서 박경호군을 만났다.
경호의 손에는 이쁘게 세로판지에 싸여진 빨간색 장미꽃이 한송이가 들여저 있었다.
산에 오른사람 (도착순서)
김임섭, 최영순부부, 유희봉, 박종원, 최홍, 김동인, 전봉구, 장웅태, 문시헌, 원호연, 원정상, 박래원,
김세기, 이우철, 백금석, 박홍식, 방석순, 김종기, 박훈신, 노재민, 유능화, 김지영, 손동순, 민병선,
길영순, 김창민, 김영걸
매봉산장에서 만난사람.
박경호, 박효순, 이건창, 김철식, 김동호, 이춘호, 김문정, 민경은, 김상태, 김흥식, 정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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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01대모산산행기
새벽에 비가 장대같이 뿌리더니 아침에는 조금 잦아들었다. 배낭에 우산이다,
비옷이다 챙겨 넣고 수서역에 모인 사람은 백금석, 유희봉, 김동인, 박홍식, 방석순, 장웅태, 최홍,
최영순부부, 원호연, 김임섭 모두 13명.
수서역 6번 출구에 있는 자전거 보관대 뒤를 통하여 오르니 바로 대모산으로 가는 길이다. 일기예보 탓인지
등산객이 드문 드문이다. 대모산의 높이는 296m이니까 오늘이야 말로 하이킹코스다.
세 번째 고개 마루턱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땀을 식힌다. 오늘의 수다 메뉴는 산에 올 때 도시락을 어떻게
준비하느냐다. 아직도 마누라가 싸주는 사람, 도시락 싸달라고 부탁했다가 깨갱한 경험으로 자기가 주섬주섬 싸서
나오는 사람, 이 눈치 저 눈치 안보고 산 밑에서 김밥 한 줄로 때우는 사람 등, 어찌 보면 숫놈 역할이
끝나가는 비애이지만 그래도 재미있다고 웃고 떠든다.
다섯번째 고개가 대모산 정상. 어제 밤에 비와 함께 바람이 스모그를 쓸어 갔는지 저 멀리 북악산너머로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북한산까지 아주 가깝게 보인다. 지난주 누군가 갖고 왔다고 박래원군이 꺼낸 위스키로
정상주를 마신 후 구룡산을 향한다. 국정원 철망을 따라 난 길로 일곱 번째 고개가 구룡산 정상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쌍둥이 빌딩이 바로 아래에 보이고 멀리로는 청계산의 옥녀봉이 보인다.
신작로 길에 내려섰더니 한시가 조금 넘은 시간. 호연이의 안내로 설렁탕 집에서 점심을 먹는다. 수육 두
접시와 소주를 마셨고, 산에서 먹다 남은 래원이의 위스키도 비웠다. 오랜만에 산우회에 나왔으니 그냥 있으면
안 된다는 일동의 성화에 동인이가 소리 없이 점심값을 계산한다. 집으로 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 두명인가
세명인가를 빼고는 우루루 당구장으로 몰려갔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그동안 참고 참았던 빗줄기, 갑자기
소낙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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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08 도봉산산행기
수, 목요일의 일기예보에는 일요일 비가 온다더니, 금요일의 일기예보는 주말에 비 소식이 없단다. 하여튼
일요일 아침은 잔뜩 흐렸다. 도봉산 자연탐방안내소 앞에 모인 사람은 모두 아홉명. 원호연, 최홍, 설정구,
유희봉, 백금석, 이상철, 김임섭, 박홍식, 방석순.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전의 국립공원 매표소가 요즈음에는 자연탐방안내소라고 간판을 고처 달았다.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로 장소를 알릴 때 자연탐방안내소는 너무 길어서 구 매표소라고 알리는데, 앞으로는 ‘자탐소’
또는 ‘안내소’라고 해야겠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놓고 보면 처음에 간판을 바꾸어 달 때 그냥
도봉산안내소라고 하면 어땠을까? 꼭 자연탐방안내소라고 멋을 부렸어야 했을까.
등산안내지도 앞에서 오늘의 코스를 회장이 브리핑을 하는데 회원들의 반응이 영 시원하지가 않다. 한마디로
멀다는 것이다. 우선 올라가보고 하산 코스를 정하자는 중재안으로 마당바위 쪽 코스를 정하고 오르는데, 오메
힘든 거! 날은 덥지요, 땀은 나지요, 목은 마르지요, 오름 팍은 계속이지요.
천축사를 지나 마당바위를 못 미처 길 옆 그늘에서 점심을 먹고 바위 위 나무그늘에서 몇몇은 오수를 즐기는데,
어떤 누구는 낮에 잠을 자면 밤에 못 잔다나 어쩐다나, 또 어떤 누구는 산에서는 잠이 안 온다나 어쩐다나
수다를 떨고 앉았는데, 이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코를 골며 자는 사람은 건강한 걸까 무딘 걸까?
힘들다고 바로 하산하자는 사람들을 왔던 길로 되돌아 갈수는 없지 않느냐고 회장이 은근히 꼬셔서 능선길에는
붙었는데, 갈림길만 나오면 내려가자고 성화고, 다음 갈림길에서 하산하자고 겨우 달래서 길을 재촉했더니
이번에는 갈림길이 안 나온다고 성화다. 업친대 겹친 격으로 이번에는 짜식들이 말이 많다는 성화까지 겹친다.
염천에 산엘 가겠다고 배낭을 메고 나올 때는 이만한 각오들은 했지만 막상 덥고 힘이 든데다가 동창들 사이이니
마음껏 투정을 부리는 회원들을 향해 나 같으면 화도 내어 봄직한데, 싫은 기색 없이 살살 달래가며 팀을
리드하는 우리 원호연 회장은 위대하다.
계획된 하산코스는 우이동이였지만 그놈의 더위 때문에 계획을 수정하여 도봉산 자연탐방안내소 쪽으로 내려왔다.
파전, 메추리구이를 안주삼아 생맥주와 소주를 비웠고, 올겡이국으로 저녁도 먹고 헤어졌다. 아 참, 여름에
메추리구이는 맥주안주로 별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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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15 수리산산행기
원래 오늘 산행은 북설악 아니오리계곡으로 가기로 했으나 며칠 전에 강원도에 온
폭우 때문에 계곡에 물도 많이 불었을 테고 또 태풍도 온다고 하니 행선지를 안양의 수리산으로 변경했다.
이전과는 달리 행선지를 갑자기 바꾸어도 인터넷에 올리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연락은 끝, 참으로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장마철 날씨답지 않게 화창한 햇빛에 일본으로 상륙한 태풍 Man-yi 덕분에 바람은 시원하고, 그저께부터
불던 바람에 시내에 깔린 스모그를 몰아내어 시계도 맑다. 안양역광장에 10시를 전후해서 모인 사람은 원호연,
백금석, 유희봉, 박홍식, 장웅태, 이상철, 김동인, 최영순, 문시헌, 이춘호, 김임섭 모두 11명.
안양역에서 수리산의 입구인 현충탑으로 가려면 안양중앙시장을 끼고 가게 된다. 안양 사는 문시헌의 안내로 시장
안 떡집에서 김밥 한 줄을 사서 배낭에 넣는다. 배낭 안에는 지난번 청계산에서 나누어 주고 남은 등산용
내의가 3주째 들어 있다. 어이~ 도근회, 박태국, 오재홍, 김강복 형님들 제발 좀 갖고 가시오. 매번
배낭에 넣어 오려니 무겁기도 하고, 안 챙기면 의리 없다고 할 테고, 나 죽것소.
산행을 하다보면 산길이 크게 두가지로 분류되는 것 같다. 하나는 옛 부터 있던 길이고 또 하나는 등산객이
많다보니 완전히 등산용으로 새로 개설된 길이다. 수리산의 산길은 후자에 속한 것 같다. 태을봉을 가운데 두고
산허리를 이리저리 도는 것 같은데 금석이나, 호연이가 아니니 현 위치가 어디가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한
여름의 때약 볕은 숲에 가리고 때 맞혀 부는 바람은 시원하기가 이를 데 없다.
제2만남의 광장인가 어딘가를 향해가다가 점심을 먹었고, 식후에 엥엥 거리는 모기떼에 헌혈을 하면서 몇몇은
오수를 즐겼고 나머지사람들은 불침번을 섰다. 병목 안쪽으로 내려오다 계곡에서 발을 씻으며 땀을 식혔다.
금석이의 안내로 두부음식이 맛있다는 곳에서 소주 다섯 병을 해치우고 나섰더니, 하필이면 오늘이 초복이라 좁은
길이 들어가는 차, 나오는 차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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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22 북한산산행기
요즈음의 산행은 말 그대로 산행을 즐기고 있다.
염천 더위를 고려하여 그렇게 부담되지 않도록 한 두어시간 땀을 쭉 빼면서 산을 올랐다가 하산길에는 계곡에서
발도 담구고 땀도 식힐 수 있는 코스를 정하는 명 산우회회장 호연이의 덕분이기도 하고, 날씨 또한 우리를
도와서 장마철인데도 아슬아슬하게 일요일은 비를 피하고 게다가 잔뜩 낀 구름은 햇빛까지 가려주니 이거야 말로
산행을 즐기는 것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산은 진초록으로 신록이 우거졌지요, 멤메~엠 매미소리 들리지요, 언덕에 올라서면 시원한 바람 불지요, 아래로
내려오면 잦은 비 때문에 졸졸졸 물소리 들리지요, 계곡은 맑아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지요, 싱거운 친구들이
곁에 있어서 웃겨주지요..., 또 뭐 없나?
혹시, 가만히 있어도 더운데 이 더위에 산은 무슨 산 하시는 분들 계시면, TV 리모컨과 그만 싸우시고,
사모님의 눈치 점심밥 그만 드시고, 우리 산우회에 한번 나와 보시라고 적극 추천합니다.
그건 그렇고, 구기동에는 맛있는 도시락집이 있다. 김밥은 2000원짜리와, 3000원짜리가 있는데 아는
사람은 3000원짜리 도시락을 산다. 도시락을 사서 배낭에 넣고 있는데, 장웅태가 아는 척한다. 웅태는
아직도 담배를 피운다. 김창민교수도 피우고, 상철이도 피운다. 시쳇말로 사람대접을 못 받는 녀석들이다. 나는
8월 초 하기휴가 때에 끊을 계획을 세웠는데, 성공할레나 어쩔레나?
구기파출소 건너 켠에 반가운 얼굴들이 모였다. 원호연, 유희봉, 원정상, 백금석, 이상철, 장웅태, 김임섭,
오재홍, 방석순, 박홍식 모두 열명이다. 오늘은 모처럼 동창회 총무일로 바쁜 오재홍군도 나왔다. 요즈음 왜
이렇게 뜸 했냐고 물어본다. 마라톤을 한 이후부터 산이 싱겁단다. 달리기는 한 두시간 달리면 운동이 되는데
산은 하루를 투자해야 된단다. 산에 대한 완전한 네거티브다. 국가정보원에서 TFT를 구성하여 진의를 파악해
봐야겠다.
구기파출소에서 대남문을 향하여 출발한다. 산자락에 있는 수퍼에서 회장이 막걸리를 산다. 매번 산에 갈 때마다
막걸리는 회장 원호연이 제공하고 있다. 한번 산행에 4통 정도를 사니 한 해 동안에 한 200통은 사는
셈이다. 아이구 이것도 한 30만원은 되네. 호연 회장 생큐!!!
구기매표소 1.4Km, 대남문 1,1라고 쓰인 이정표 부근에서 땀을 식히며 시원한 막걸리를 마신다. 경상도
말로 쎄가 빠지도록 힘들게 걷다가 그늘에서 잠간 쉬며, 지나가는 등산객의 힐끗힐끗 부러운 눈초리를 의식하며
마신 막걸리가 짜르르 식도를 타고 넘어가 적당하게 취기가 되어 올라오면 어메 여기가 천국이지 어디 천국이
따로 있담.
대남문을 지나 적당한 자리에서 점심을 먹고 한 40분간을 누워서 딩굴다가 개울을 따라 구파발 쪽으로 하산을
한다. 이제 오름팍은 없으니 발걸음도 가볍다. 산길을 따라 내려오던 개울물이 발을 담글만한 정도의 깊이가
되자 개울로 내려간다. 등산화를 벗고 발을 담근다. 지난주까지는 개울물이 뼈 속까지 차더니 오늘은 쉬원하다.
한여름의 태양이 바위를 데우고 데워진 바위를 타고 넘은 개울물도 당연히 데워졌겠지. 개구쟁이 같이 물도
튀기도 놀다가 일어선다. 군북식당인가 하는 곳에서 양념 돼지고기와 생맥주를 마시고 그 집 봉고차를 얻어 타고
구파발 전철역에서 헤어진다. 이번 주 26일 사목회에서 다시 만나자고 눈인사를 하며 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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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29 관악산 산행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우리 산우회는 출격합니다.’
일기예보는 오늘 서울 경기지방에 20~50m의 비가 온다고 잔뜩 겁을 주지만, 아침에 비는 오지 않고 잔뜩
먹구름이다. 서울대행 버스를 공군회관 앞에서 탔더니 최영순, 이상철, 백금석군이 나란히 앉아 있다가 웃으며
반긴다. 버스를 타기 전에 모여서 탔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각자 탔는데 같은 버스를 탄거며. 이대로라면
약속시간 10분 전 쯤에 도착할 것 같다고 한다. 이제 등산집합시간에 맞추는 것쯤은 다들 도사들이다.
원호연, 원정상, 장웅태는 미리 와 있었고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최영순, 이상철, 백금석, 김임섭, 뒤에 온
유희봉군과 약속시간 맞추기에 아직 서투른 박홍식과 방석순군이 막 사당역을 통과하고 있다니 오늘 등산객은 모두
10명이다. 홍식군과 석순군은 제4야영장에서 만나기로 기별을 해놓고 출발한다.
서울대입구에서 관악산으로 오르는 그 넓은 시멘트길이 등산객으로 대만원이다. 이 삼복 더위에, 소낙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도 아랑곳없이 울긋불긋한 등산복으로 커다란 띠가 되어 산 쪽으로 이동한다. 사람들을 피하여 계곡
왼쪽에 있는 좁은 시멘트 축대 길을 따라 오른다. 이 길은 지난 겨울, 바닥이 눈으로 얼어 있었을 때 민경은
영감이 힘들게 하산하던 길이다. 우리 민영감은 그 날 이후로 산엘 나오지 않는다. 요즈음은 산행기에 댓글도
달지 않아 궁금하기 짝이 없었는데, 지난 목요일 사목회모임에 건강한 모습으로 나와서 반가웠었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보태자면 미국에 갔던 이승배군도 그날 나왔었는데, 미국여행의 여독이 덜 풀린 탓인지, 맹장염
수술의 후유증이 덜 회복된 탓인지 얼굴이 조금 수척해 보였다.
그 동안 비가 많이 와서 계곡을 씻어 내렸으니 물이 아주 맑다. 계곡 중간에 조그만 소(沼)부근에는 지금이
이른 시간인데도 초등학생이나 됨직한 여나믄 꼬마 녀석들이 수영복을 입고는 물장구를 치고 있고 그 옆에서
어머니들이 애들 먹이려고 옥수수 삶고 있다. 갑자기 옛날이 생각난다. 지금은 중늙은이가 되어버린 지네 애미가
아들 입힌다고 알룩달룩한 이쁜 수영복을 사온 날 코를 벌렁거리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던 내 아들놈
머리위로 마누라랑 마주보며 미소를 주고받은 일이 엊그제 같다.
제4야영지에서 홍식이와 석순이를 만났고 우거지(友巨志)라고 어거지로 한자까지 토를 달아 놓는 표지판 앞에서
금석이와 몇몇은 계곡을 따라 오르다, 적당한 곳에 차일을 치고 자리를 잡아 본대를 기다리기로 하고 나머지는
우거지 쪽으로 향한다. 갑자기 아주 건사한 산길로 이어지더니, 이내 우거지 약수터가 나온다. 약수터에서
약수도 마시고 막걸리도 마시고 본격적 경사길로 들어선다.
갑자기 하늘이 깜깜해지고 후두둑 소낙비가 내린다. 천둥도 친다. 각자 우비를 꺼내서 비 채비를 한다. 구름이
낮게 드리운 것인지 안개가 낀 것인지 농무 속에서 산의 윤곽이 보이지 않으니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할 수가
없다. 산길을 따라 오르기는 하지만 여기가 깊은 산중이거나 초행 산길이면 어쩔까하고 내심 불안한데,
산우회회장이 결단을 내린다. 더 오를 것이 아니라 하산하잔다. 옳다. 이런 일기 조건이면 오를 것이 아니라
하산하는 것이 옳다. 무리를 리더하는 사람은 판단이 신속해야한다. 앞이 보이지도 않는 산속에서 금석군 일행이
있는 계곡을 찾아간다고 우물대다가는 안 좋은 일이 닥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계곡에서 기다리는 금석군 일행에게 따로 점심식사를 하고 하산하여 우거지 부근 계곡에서 만나자고 핸폰으로
연락을 하고는 우리도 밥자리를 찾아 하산한다. 연주약수터라고 표시된 앞에 이 약수터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이
처 놓았음직한 커다란 차일 속으로 들어가 비를 피해 그 속에서 점심을 먹는다.
밥을 먹고, 땀에도 젖고 비에도 젖은 몸을 대충 말리고 일어선다. 이제는 간간이 햇빛도 보인다. 내려가다가
계곡을 만났고 사람들을 피해 적당한 자리에서 발을 씻었고 금석이 팀을 만난다. 북한산 용혈봉에 벼락이
떨어져서 1명이 즉사하고 6명이 중상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이상철군의 안내로 서울대앞 버스정류장 길 건너 꽃가게 뒤켠의 털보네라는 노천식당에서 오리로스구이를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고는 헤어진다. 저녁 TV에서 용혈봉 벼락으로 등산객 4명 즉사, 2명 중상. 수락산 벼락으로
등산객 1명 즉사라는 뉴스를 보며, 오르기를 중단하고 하산하자고한 산우회회장 호연이를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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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05 북한산 산행기
오늘의 집합장소는 정능 청수장 앞이다.
오랜만에 나온 도근회가 제일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김임섭, 이상철, 최영순부부, 유희봉, 장웅태,
설정구, 얼마전에 큰 일을 치른 홍영화, 방석순, 박홍식의 순서로 모두 11명이 모였다. 산우회회장 원호연은
식구들과 휴가 가느라 불참이고, 우리 산우회의 종신 산악대장인 배금석군은 협심증 증세로 입원 중이라
불참이다. 10~50mm의 집중호우가 예상된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흐리기는 했어도 하산 할 때 까지 비는
오지 않았다.
청수장을 바라보고 길 양쪽으로 죽 가게 들이 늘어서 있는데, 오른쪽 제일 끝집이 할머니돼지갈비인가 하는
집이다. 가게 앞 한 뼘만한 화단에 먹음직스럽게 풋고추를 달고 고추나무가 몇 포기가 서 있다. 일행을
기다리며 어슬렁거리다 옆에 있는 이상철에게 ‘이거 몇 개 딸까’하고는 이어서 ‘잡히면 괜히 창피를 당하겠지’
했더니 상철 왈 ‘변상해주면 될 거 아냐’ 한다. ‘어떻게 변상할 건데’ 했더니 ‘내꺼 따가라 그러지 뭐.
요새야 말로 별로 쓰지도 못하는데.' 한다. 우 하하하, 우리 산우회는 집합시간부터 유쾌하다.
지난주에 있었던 용혈봉 낙뢰사건 때문인지 등산객이 눈에 띄게 적다. 등산 안내판 앞에서 영추사를 경유하여
대성문을 지나 보국문까지 갔다가 다시 청수장으로 내려오기로 코스를 정한다. 날은 덥고 습도가 높아서인지 얼마
오르지 않아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다. 아침을 걸렀다는 몇몇은 점심 후의 후식인 장웅태의 아이비를 작살내고는
계면쩍은 얼굴로 뒤 딸아 온다.
급 경사 길의 중간쯤에 있는 영추사를 조금 지나 막걸리 휴식을 한다. 더운 여름날 땀을 잔뜩 흘린 후의 갈증
속에서 마시는 시원한 막걸리는 그야 말로 as like silk지만 약간 취기가 오른 다음에 경사 길을
오르자면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막걸리를 마신 후의 이 지겨운 고통을 알지만 얼음이 동동 뜨는 그 놈을 보고는
모른 척 할 수가 없다. 산수갑산을 갈 때는 가드라도 시원하게 두 컵을 연거푸 들이킨다.
대성문까지 마지막으로 급한 계단을 남겨놓고 밥자리를 챙긴다. 지난번 구기동에서 올라 왔을 때의 바로 그
밥자리다. 오늘은 술을 공급하는 금석이도 없고, 호연이도 없으니 술이 모자를 듯한데 오랜 만에 나온 도근회가
벌주라고 반쯤 남은 위스키를 꺼낸다. 요즈음 점심때의 화제는 희봉이와 영순이의 농사 짓는 얘기다. 희봉이는
고추 농사가 잘 되어서 다음 주에는 풋고추를 왕창 갖고 와서 나누어 주겠단다. 토란도 잘 되어서 토란잎이
무성하다는데, 토란대를 잘 말렸다가 육개장에 넣어도 되고 간장에 담구었다 김밥에 넣어도 되는 맛있는 놈인데
희봉이네가 멀어서 얻으러 가기가 좀 그렇긴 하다.
점심을 먹고 보통 때면 그늘에 각자 흩어져 오수를 즐기겠지만 오늘은 바닥이 젖었으니 아무도 잘 생각을
않는다. 설정구는 볼일이 있다고 먼저 하산하고, 점심 먹느라고 이리저리 흩어 놓았던 장비를 꾸리고는 대성문을
향하여 출발한다. 계단을 올라서 삐죽 뻬죽 날카로운 바위길을 지나 대성문에 도착하여 헐떡이는 숨을 고른다.
대성문 앞에서 오늘도 카메라를 향하여 나란히 선다. 하나, 둘, 셋, 사진사의 구령에 맞추어 미소를 짓는다.
이제부터는 평평한 내리막길이다 성벽을 오른쪽으로 끼고 보국문에 다다른다. 보국문은 누각은 없고 바위로 된
석문만 있다. 석문을 나서서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그럴듯하게 은폐가 되는 계곡 물가로 찾아 든다. 다들
웃통을 벗어 제치고는 차가운 계곡물을 수건을 적셔서 덩어리니 배를 문지른다. 오메! 시원한 것. 여름의
산행은 이 맛 아닌가. 오르느라 죽으라고 땀을 빼고는 계곡에 발을 담그고 시원한 막걸리 한 잔. 임섭이가
꼬불쳐 둔 막걸리를 꺼낸다. 돌아가면서 스텐레스 고뿌를 붙잡고 커~ 소리를 낸다.
정능 청수장 매표소자리를 빠져나와 버스 종점께로 내려오면 한박사라는 냉면집이 있다. 요즈음 서울에서는
드물게도 면을 직접 뽑는 집이다. 산에서 하산 할 때 외는 먹어보지 않아 보통 때 맛은 어떤지 모르지만 하산
길에 들르는 이 집의 물냉면 맛은 기차다. 오늘은 돼지갈비를 먹고 냉면을 먹자는 희봉군의 말에 따라
돼지갈비를 시킨다. 지지난 주에 부친상을 당한 홍영화가 친구들이 많이 와주어서 고맙다고 식대를 부담하겠다고
한다. 다른 일로 상가에 들리지 못한 나는 그냥 얻어 먹으려니 미안하기 짝이 없다.
여름산행은 산행을 끝내고도 날이 훤해서 여유가 있다. 물냉면까지 챙겨서 먹고 나왔는데도 아직까지도 훤하다.
영순이부부와 상철이와 같은 버스를 타고 오다가 상철이의 꼬임에 넘어가 네명이서 여의도 고수부지 잔디밭에 앉아
닭 날개와 생맥주를 배달시켜 먹고는 어쩌구 저쩌구 수다를 떨다가 깜깜해지고도 한 참 지나서 집으로 돌아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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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12 청계산산행기 (원호연 수연)
어제 토요일은 모처럼 여름답게 쨍쨍한 햇빛으로 무지 덥더니 오늘은 날씨가 돌변하여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산행 중에 산에서 비를 맞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아침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리고 있는데 배낭을 짊어지고 한손에 우산을 받혀들고 집을 나서니 좀 계면쩍기도 하다.
아침부터 비가오니 오늘 참석자는 몇 명이 안 될 거라는 생각은 기우였다. 10시2분에 옛골버스종점에서 버스를
내렸더니 원호연, 원정상, 도근회, 방석순, 박홍식, 유희봉, 장웅태, 이상철, 최영순부부가 벌써 와서
버스종점의 수퍼 앞에서 우산으로 비를 피하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정익신이 왔다. 모두 12명이다.
오늘 누가 쏜다는데 누구냐고 물었더니 아직 그것도 몰랐냐는 투로 회장 원호연의 회갑 회식이란다. 아차, 다른
일도 아니고 다른 사람도 아닌 회장 호연이의 회갑회식이면 홍보를 왕창해서 많은 사람들이 축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총무의 일인데 아차차 이건 큰 실수다. 뿐만 아니라 오늘의 회비는 고스라니 산우회비로 적립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데, 총무답지 않게 일을 저지른 거다. 아무리 일을 저질러도 중도에 사표는 낼 수 없다. 사표
내겠다는 소리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일 년을 더 하라고 할테니 결코 사표는 낼 수 없다. 이 글을
읽으시는 강호의 현자들께서는 환갑회식이 있을 때는 제발 총무에게 미리 연락 바랍니다.
그건 그렇고 다시 산행기로 되돌아가자.
매봉에서 혈읍재를 지나 다시 옛골로 내려올 계획이라는 회장의 간단한 설명을 듣는다. 최영순댁 사모님은 노란색
레인코트가 아닌 노란 비닐 비옷차림이고 나는 지난번 산행 때 청수장 앞에서 거금 만원을 주고 산 판초를
뒤집어 쓴 차림이다. 여름에 판초우의는 더워서 안 된다고 주위에서 말리지만 그래도 새로 산 옷인데 한번은
입어봐야지 하고 고집을 피운다. 나머지 사람들은 한 손에는 우산을 그리고 반대편에는 스틱을 잡은 차림으로
정토사 쪽으로 이동한다. 정토사를 못 미처 비 오는 날 산은 무슨 산이냐고 계속 투덜투덜하던 정익신이가
안가겠다고 되돌아간다. 청토사 마당에서 커다란 화분에 자라고 있는 하얀 연꽃이 너무 곱다.
비는 오지만 다행이 바람이 부니 아주 시원하다. 청계산에는 산길을 따라 벤치가 놓여진 휴식처가 많다. 비가
오는 날은 벤치가 젖어있어서 앉을 수 없으니 무용지물이지만 그래도 벤치부근에서 쉰다. 쉬기를 세 번쯤 했을
때에 막걸리도 마신다. 비는 오다가다를 반복하고 있다.
돌문바위를 얼마 남기지 않고 좌측으로 틀어 혈읍재를 바로 가는 길로 들어선다. 적당한 자리에 밥을 먹으려
자리를 편다. 11시 50분이니 시간이 이르다. 다행히 비가 멈추어 비에 젖은 밥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희봉이가 지난번 약속대로 한 자루의 무농약 풋고추를 꺼낸다. 밑거름을 충분히 주고 웃거름을 두번 주었더니
고추가 아주 잘 자라 한 포기에서만 딴 거라 한다. 모두 48포기가 있는데 처치곤란이라 다음 주에 또 갖고
오겠다한다. 고추를 붉게 익혀서 김장때 쓰지 그러냐 했더니 고추는 제때에 농약을 치지 않으면 고추탄저병에
걸려서 못쓰게 된단다. 무농약 풋고추를 서로 나누어 갖어서 좋기야 하다마는 맨입에 얻어먹으려하니 좀 맹숭하다.
점심을 먹었으니 이제 하산길이다. 오늘의 하산 길은 걱정이다. 배가 꺼져야 호연이 회식을 맛 잇게 먹을텐데
올라 온 길이 얼마 안 되니 내려 갈 길도 얼마 되지 않는다. 바로 비가 온 후라 여기저기가 개울이다.
적당한 자리에 앉아 발을 담구고 물고기 먹이도 만들었지만 배를 꺼뜨리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번 박래원군의 회갑회식을 했던 매봉산장에 도착했더니 세시 남짓. 기별을 듣고 정익신군이 다시 왔고,
이춘호군도 왔다. 오리고기 로스로 맥주도 마시고 소주도 마신다. 회갑이라면 분명히 축하 할 일인데, 막상
심적으로는 축하할 일인지 육십이나 늙었음을 한탄할 일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하여튼 원호연, 회갑을
축하하네!!!
집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명색이 회갑회식이면 저녁만 얻어먹고 헤어질게 아니라 2차도 가고 노래방도 가서
떠들썩한 축하 분위기에서 거나하게 취한 친구를 집으로 들여보내야하는 게 아닌지 맹숭하게 호연이를 보내고는
혼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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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5 청량산 산행기 (유희봉
수연)
집에서부터 집합지인 8호선 산성역까지 경로설계를 잘못하여 택시 한 번에다 전철을
네 번이나 갈아타고 1시간 40분이나 걸려 산성역에 도착했더니, 늦게 왔다고 원성이 자자하다. 못들은 체
한다. 20분 만에 한 번씩 온다는 남한산성 남문행 9번 버스를 기다렸다가 탄다. 옛날 강원도 산길을
연상하는 겨우 2차선 넓이의 산길이 구불구불하게 산허리로 감돌아 올라간다. 아마 자연보호 때문에 도로를
확장하지 못하나 보다. 그래도 옛날 강원도 산길과는 다르게 잘 포장되어 있고 버스는 덜컹거리지도 않으며
에어컨바람이 시원하게 나오고 있다.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서 13번째 정거장인 남문 앞 정거장에 내렸더니 미리 와서 기다리던
일행들이 반긴다. 원호연, 유희봉, 박홍식, 방석순, 이춘호, 박래원, 원정상, 장웅태, 박태국, 이승배,
김동인, 최홍, 이우철, 최영순부부, 김임섭 모두 16명이다. 지난 주 목요일 사목회 ‘개고기 먹자’ 미팅
때 오래 만에 만나 산우회 참석을 약속한 장명순교수의 얼굴도 보이지 않고 협심증 시술 후 오늘쯤은 어떨까
했던 백금석군도 불참이다. 아마도 백도사는 집에서 무지하게 갑갑할 낀데...
지하문이라는 현판이 달려있고 단청으로 잘 손질된 남문을 통과한 시간이 정확히 11시. 이곳을 자주 왔었다는
우철이가 리더를 하기로 하고 산성의 안쪽에서 성벽을 왼쪽으로 끼고 시계방향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올
여름치고는 드물게 화창한 날이라 햇빛이 강열하다. ‘초, 중, 말복의 3복도 지나고 처서도 지났는데도 더위는
여전하다’라는 말을 요즈음 젊은이들은 ‘삼복도 지나고 광복도 지나 사복이 다 지났는데도 더위는
여전하다.’라고 한다나 어쩐다나. 꽤 오래 전부터 집의 한구석에 굴러다니던 걸 쓰고 나왔다는 널따란 챙이
달린 색 바랜 밀짚모자를 쓴 석순이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남한산성쯤이야지만 그래도 산은 산, 땀이 비 오듯
한다.
1636년 음력 12월, 청의 대군은 압록강을 건너 눈보라를 몰고 서울로 진격해 왔다. 병자호란이었다.
정묘호란을 겪은 지 불과 9년 만이었다. 방비를 갖추지 못한 채 척화를 내세우던 조선 조정은 정묘호란 때처럼
다시 강화도로 파천하려 했으나, 길이 끊겨 남한산성으로 들 수밖에 없었다. 인조는 정확하게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간 이성에 있었다. 이후 인조는 성을 나가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고, 소현, 봉림이 어쩌구 저쩌구하는 이때의 속 터지는 얘기를 참을 만한 사람은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남한산성은 청량산을 한편에 끼고 앉은 성이다. 등산객 입장에서 말하자면 남한산성은 성이라기보다는 산이다.
얼마 오르지 않아 영춘정(迎春亭)이라는 팔각으로 된 정자를 만난다. 봄을 맞이하는 정자라는 뜻일 텐데 봄에는
여기가 어떤 모습일레나?. 이 정자는 원래는 남문 아래에 있던 것을 남문과 수어장대 중간 어름산성 가까이에
2003년에 옮겨서 새롭게 단장을 했단다. 서쪽으로 트여 있어서 서울과 성남을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일몰이 꽤
멋이 있다는데.
도중에 막걸리를 한잔 하자고 재촉인데, 우철이는 수어장대가 넓으니 그곳에서 하잔다. 2층 누각인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의 상징답게 화려하고 웅장했다.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무망루(無望樓)라고 병자호란의 치욕을 잊지
말자고 영조가 쓴 편액이 어딘가에 있다는데 찾을 수가 없다. 수어장대 왼쪽으로 청량당이 있다. 청량당이 있는
곳이 청량산에서 제일 높은 곳이란다. 산꼭대기의 바람이 시원해서 청량당이라 했을까?
회장 원호연이 얼려온 맥주가 적당히 녹아 스텐레스 컾에 얼음을 동동 띄우면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감촉이
좋다. 술기운이 있으면 앞길이 숨이 찰텐데 그래도 이 맛을 마다 할 수 없다. 연거푸 3잔을 들이킨다.
차가운 맥주가 자르르 목을 타고 내려가니 이제야 뭐가 제대로 보인다. 4명이 없다. 앞서가던 상철, 홍식,
정상, 승배가 지나쳐 버린 모양이다. 예들은 뭐야? 이 시원한 맥주 맛도 못보고 어디서 무얼하고 있단
말인가? 아침에 호연이가 지급한 막걸리나 마시고 있겠지? 짜식들! 같이 뭉쳐 다녀야 제대로 얻어먹지. 땀을
식히고 서문 쪽으로 간다. 한 5분 쯤 갔나? 어랍쇼 4명이서 야트막히 높은 곳에 퍼대고 앉아 매운맛 가미
오징어포까지 꺼내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니네들은 이 시원한 맥주 못 마셨지 하는 표정들이다.
서문을 지나 한 참을 내려가더니 급경사 오르막이다. 다행히 구름이 몰려와서 햇빛을 가리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헉헉대고 올라가는데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가가 그런다. 여기서 저 사람들과 임무교대하면
안될까? 우리는 다시 내려가고 저 사람들은 다시 올라가고. 내려가는 사람들이 잠깐은 부럽다. 지금쯤은 밥
먹을 시간. 우철이가 북문까지 가면 한적한 곳이 많다고 북문까지 가잔다. 남한산성을 꽤차고 있는 우철이가
하는 말이니 아무도 반론이 없다. 오메 성님, 한적한 곳 찾다가 나 죽것소.
북문에 다다르니 제법 호젓하다. 두 팀이 선점하고 있는 자리를 호연이가 양해를 구하니 한 팀이 방을 빨리
빼준다. 16명이 둘러앉는다. 오늘은 희봉이가 환갑회식을 쏜다니 점심들이 부실하다. 몇 명만 제대로 점심을
싸오고 나머지는 김밥이다. 그런데 술은 많다. 최홍이가 러시아에서 샀다는 보드카를 꺼내고, 춘호인가가
마오타이를 꺼낸다. 그런데 어랍쇼 이건 뭐야, 승배가 센프란에서 샀다고 휴대용 포도주 셋을 꺼내 펼쳐
놓는다. 반으로 갈라지는 이 셋의 한쪽에는 포도주가 한 병 들어 있었고 반대쪽에는 크리스탈 잔이 2개,
콜크병마개따개가 1개, 그리고 야외에서 펼칠 수 있게 행크치프가 2장 들어 있었다. 남한산성 북문 곁에서
행크치프 위에다 얌전히 크리스탈 잔을 올려놓고 프랑스산 포도주를 따라 마신다. 김밥을 한 점 먹고 이번에는
러시아제 보드카를 마신다. 국태가 갖고 온 순 토종, 황진이라는 색깔도 이쁜 붉은 술도 같이 마신다.
점심도 먹고 좋은 술도 마셨으니 이제는 부러운게 없다. 이리저리 각자의 깔판을 챙겨서 들어 눕는다. 올 여름
등산에서는 자주 온 비 때문에 땅이 젖어서 오수를 한 적이 없다. 어쩌면 금년 여름에 처음인지 모르겠다. 참
오랜만이다. 등짝을 시원한 땅에 붙이고 들어 누어 넓게 펼쳐진 하늘을 본다. 나뭇잎은 바람에 건들거리고
매미는 죽어라 미암미암 암놈을 불러 쌓는다. 국민학교 다닐 때 자연시간에 쓰르람매미니, 참매미니 어쩌구
매미이름을 배웠던 기억이 난다. 오늘이 바로 61회째 생일인 희봉이는 모기에 물렸다고 하얀 종아리를 긁으며
투덜댄다.
동장대가 있었다는 곳에서는 벌봉 쪽으로 크게 이어진 성곽과 장경사 쪽으로 내려가는 내부성곽으로 갈라진다.
장경사 쪽 길로 들어선다. 이제는 그냥 내리막길이라 길도 수월하다. 장경사지 옹성도 돌아보고 장경사에서
시원한 물도 한잔 마신다. 어디서 어떻게 들어왔는지 장경사 앞에는 승용차가 몇 대 서있다. 등산로를 따라
남문으로 갈지, 승용차길을 따라 남문으로 갈지 설왕설래하다가 우철이 말에 따라 계곡에서 발을 씻자고 암문으로
빠진다. 문이 풀숲에 숨어 있어서 모르는 사람은 찾기 힘든 말 그대로 암문이다. 축축하게 젖은 암문을
통과했더니 길은 호젓해서 좋은데 개울물은 절에서 내려오는 생활하수가 섞여서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발닦기를
포기하고 큰길로 내려섰더니 음식점의 평상들이 개울가를 다 차지하고 있다.
이제 남문까지 신작로를 따라 걷는다. 길가 안내판에는 남문까지 1.6Km가 남았단다. 한참을 걸어야 할
판이다. 남문을 향하는 일방통행 길에 16명이 한 줄로 늘어서서 산길을 간다. 요즈음이야 이런 일이 없지만
70년대의 산행에서는 포푸라나무가 죽 늘어선 먼지 나는 신작로를 따라 몇 십리고 걸었던 기억이 새롭다.
버스가 지나간다. 혹시 새워 주려나하고 재빨리 손을 든다. 버스는 섰고, 16명이 타는 동안 일방통행의
산길에서 뒤 따라 오던 차들은 버스가 출발하기를 얌전하게 기다리고 섰다.
남문에서 아침에 타고 왔던 9번 버스를 탄다.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내린다. 나는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는데
남들은 잘도 안다. 길을 건너 금강산갈비라고 크게 간판을 단 집으로 들어간다. 이제는 유희봉의 61회
생일기념 회식이다. 아까 산에서 아껴둔 마오타이로 만수무강 건배를 하고 돼지갈비를 배가 부르도록 먹고
냉면으로 입가심도 한다. 고기를 먹을 때는 소주도 마셨다. 몇은 집으로 갔고, 또 몇은 당구장으로 갔다.
7명인가가 남아서 유희봉군을 모시고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노래방에도 들렀다. 우리가 이 노래도 불렀지.
자~아 떠어나자 동해 바아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어~어~어~어.
유희봉의 환갑을 축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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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02 북한산 산행 및 도근회수연기
광화문에서 이북5도청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10여분째를 기다리고 섰는데, 9시 50분이
지나간다. 백금석군에게 도시락을 사놓으라고 전화를 건다. 지각이 뻔한데 도시락 산다고 허둥대기가 미안해서이다. 57분에
버스를 탄다.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최홍이다. 이제 막 버스를 탔는데 늦을 것 같단다. ‘야, 나도 지금 막 탔어. 같은
버스를 탄 모양이네. 그런데 왜 못 봤지’했다. 구기동에 내렸더니 정확하게 10시15분. 호연이와 도근회가 기다리고 있다가
본대는 이미 출발했다고 일러준다. 오늘의 산행객은 모두 16명. 원호연, 백금석, 박홍식(도시락값을 깜박 잊고 못
주었음), 방석순, 도근회, 유능화, 원정상, 유희봉, 장웅태, 박효순, 최홍, 이상철, 이춘호, 최영순부부, 그리고
김임섭.
일기예보는 낮에 20~80mm의 비가 온다는데 기상대의 적중률을 올려주려는지 하늘은 구름 이 잔뜩 끼어 언제와도 비가
오기는 올 태세다. 본대를 만나려 부지런히 탕춘대를 향하여 걷는데 도근회가 부시럭 부시럭 회장에게 말을 건넨다.
9월29일이 생일인데, 다른 일요일은 못 나올지 모르니까 오늘 환갑회식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묻는다. 어떻기는 어때. 당연히
웰컴, 웰컴이지.
탕춘대 초입에서 본대를 만나 오늘 도근회 회갑잔치가 있다고 했더니 근회야 축하한다가 아니고, 금년의 산우회회장과 총무는 땡
잡았다고 난리다. 부러워들 마시라. 회비로 빌딩 사려면 금년 연말까지 잇빠이 회갑 뒤풀이로 앵벌이를 해야된단다. 친구들아.
여기서 잠깐 옆길로 빠져 보자. 사실 글을 쓰면서 환갑회식기라고 해야 하는지 회갑회식기라고 해야 하는지 갈등이 있어서
생각난 김에 인터넷백과사전에서 ‘환갑(還甲)’을 찾아보았더니 ‘회갑(回甲)·화갑(華甲/花甲)·주갑(周甲)이라고도 한다.
환갑 때는 잔치를 하는데 이것을 수연(壽宴·壽筵)이라 한다.’ 그래 맞아, 수연이라는 말이 있었지. 그래서 얼른 이 글의
제목을 도근회수연기로 고쳤더니 제법 그럴듯하고 유식해 보인다.
탕춘대능선의 중간쯤부터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산길이라 우산을 쓰기도 그렇고 안 쓰기도 그런 어정쩡한 비가 내린다.
탕춘대와 향로봉, 비봉으로 갈라지는 넓은 둔덕에서 막걸리를 마신다. 지난주의 산행은 더웠었다. 남한산성 수어장대 앞에서
마신 막걸리와는 불과 일주일 차이인데 시원함이 덜하다. 지난주에는 얼음이 덜 녹은 막걸리와 맥주를 찾아서 마셨는데 오늘은
있으니까 그저 마신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입맛의 간사함이다.
비는 계속 내리는데, 누가 그런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전에 고스톱 판에서 자주 들어서인지 정작 우산도 없이 가랑비를
맞으며 들어니 되려 어색하다. 더러는 우산을 쓰고 더러는 비닐비옷을 입고 더러는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비봉 쪽 길로
들어선다. 나는 판초를 쓴다. 판초의 모자까지 덮어 썼더니 덥고 갑갑하다. 판초의 모자를 벗는다. 어메 쉬원한 거. 가끔
판초를 쓰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협심증 수술 후 처음으로 산에 나온 우리의 백도사가 힘들어한다. 한참을 뒤처진 백도사를 상철이가 말동무하며 따라온다.
친구가 좋다. 얼마 오르지 않아 약수터 마당이 나온다. 꽤 넓고 평편해서 봄에는 산신제로 붐비는 마당이다. 올라가봐야
이만한 밥자리가 없다고 여기서 밥을 먹기로 한다. 시간은 보통 때 보다 일러서 11시40분이고 가랑비는 여전하다. 이런
날이면 분명히 백도사가 차일을 준비해왔겠지만 컨디션이 그러하니 어쩌겠는가. 비는 내리고 약수터마당의 한쪽에 둘러앉는다.
진적에 도근회의 수연이 있을지 알았으면 한 줄짜리 김밥을 샀을텐데 미리 전화로 부탁까지 해서 산 찬 따로 밥 따로 도시락이
부담스럽다. 오늘도 박효순은 반찬을 거하게 펼쳐 놓지만 아무도 아는 체 하는 사람이 없다.
점심을 먹고 배낭을 꾸려 향로봉에서 비봉으로 가는 북한산 주능선을 오른다. 사모바위까지 가서 응봉능선을 타고 진관사로
내려가기로 코스를 잡는다. 금석이를 위시한 몇 명은 힘들다고 바로 삼천사 계곡으로 빠졌고, 최홍이는 구파발은 교통이
나쁘다고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보통 때도 위험한 비봉에는 여자들도 섞여서 젖은 바위틈 사이를 기를 쓰며 오른다. 비에
젖어 더욱 거머튀티한 바위색을 배경으로 에 노랗고 빨간 원색 등산복의 움직임이 이쁘기는 하지만 아래에서 처다 보는 나는
가슴이 졸인다.
회장의 말을 쫓아 사모바위에서 왼쪽으로 꺽어서 응봉능선으로 간다. 사모바위야 수도 없이 지나다녔지만 사모바위 앞으로 쭉
뻗은 응봉능선은 나도 처음이고 다른 사람들도 처음인 모양이다. 비는 어지간히 개였지만 빗물에 흠뻑 젖은 넓적바위를
내려가려니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비가 올 때는 이쪽으로 오면 안 되겠구나하고 생각할 즈음, 짜~잔하고 펼쳐지는 양쪽의
능선의 경치가 소위 시쳇말로 죽인다. 오른쪽 능선의 용혈봉은 구름이 감돌아 돌고 왼쪽의 삼천사계곡은 비 개인 운무 아래로
푸르다 못해 시커멓다. 비가 오다가 개일 때 여기를 통과하지 않으면 도저히 못 볼 절경이다. 누구는 중국 안가도 황산이라는
둥, 또 누구는 회장 잘 만난 덕에 멋진 곳 구경했다는 둥하며 사진도 찍고 사진에 찍히기도 한다.
멋진 경치를 보며 능선을 타고 오다 진관사계곡으로 빠져서 빗물까지 더해져 세차게 흐르는 계곡에서 발을 씻고 진관사를
지난다. 이제는 먼저 내려온 금석이 일행을 만나야 한다. 전화를 걸어서 찾을 것도 없이 마을버스 정류장 못미처 맨 마지막
음식점의 파라솔 탁자 밑에서 우리를 반긴다. 음식점은 자연히 그 집으로 낙찰이다. 종업원을 따라서 계단을 내려가 계곡 곁에
마련된 커다란 평상 위에 자리를 잡는다. 계곡을 끼고 얼마나 크게 자리를 잡았던지 한 200명은 동시에 앉을 수 있는 규모의
평상이다. 저쪽에는 서너팀의 선객도 있다. 이제부터는 도근회 수연이다.
한방오리탕과 파전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먹어보지 않아도 맛을 알만한 희멀건 김치나부랭이와 된장에 찍은 생오이 몇 조각을 안주
삼아 도근회 환갑축하 건배를 한다. 소주가 서너순배 돌아가도 안주는 여전히 나올 생각을 않고, 일하는 아주머니를 불러
재촉을 해보지만 답이야 뻔하지 곧 나온다 한다. 싸움 싸움하여 나온 파전은 그야말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없어지고
그놈의 한방오리를 기다리려니 코가 빠진다. 이번에는 작전을 바꾸어 아주머니를 불러 소주를 한 잔 따루어 준다. 빨리 어떻게
해보라는 소위 뇌물이다. 자기도 늦은 게 미안한지 사양도 하지 않고 홀짝 마신다. 기다리다 못해 아주머니를 또 불러서 소주
권하기를 서너번. 여전히 오리탕 소식은 없다. 안되겠다 싶어 주방으로 간다. 한방오리를 관두고 빨리되는 두부김치로 바꾸어
달라고 목청을 높여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돌아온다.
안주를 바꾸겠다는 얼음장 덕분인지, 나올 시간이 되어서 나온 건지 한방오리탕이 나오기는 했는데 음식을 들고 온 아주머니는
나를 보고는 꼴통아저씨가 어쩌구 저쩌구 하며 주방에 와서 소란을 피우고간 거에 대해 푸념을 한다. 아무리 등산복을 입었지만
명색이 손님인데 손님더러 꼴통이니 어쩌니 하는 폼이 아까 몇 잔 권한 소주가 취하나보다. 오리고기를 먹고 있는데 난데없이
그 아주머니가 목청을 뽑는다. 젊었을 때 창 꽤나 불러본 목소리다.
주~바라 몬 묵나,
주~바라 몬 묵나,
안~주서 몬 묵지,
주~바라 몬 묵나,
주~바라 몬 묵나.
갑자기 돌발적인 아주머니의 창에 다들 눈이 휘둥글 해졌다가 노래의 가사 때문에 박장대소를 한다. 다른 테이블의 손님까지
와서 구경을 하며 웃는다. 한 곡조를 뽑더니 나에게로 와서 꼴통아저씨가 그냥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한다.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한데 주위에서 돈을 주라는 얘기란다. 만원짜리를 꺼내서 주었더니 여기다 넣어요 하며 티샤츠 속의 부라자를 휙
제친다. 까만 부라자 속의 몽실한 젖가슴위에 얌전히 얹혀진 젖꼭지가 유난히 빨간 선홍색이다. 오늘의 주빈은 건너편 저
사람이며 환갑회식 모임이라 했더니 도근회 옆에 가서 헌수를 하더니 권주가를 한 곡조 뺀다.
받으시오~
받으시오~
이 술 한잔 받으시오~
이 술 한잔 받으시며~어언~,
아까 백과사전에서 ‘환갑’란을 찾아볼 때 이런 말도 쓰여 있었다.
‘과거에는 악공(樂工)과 기생을 불러 풍악을 잡히고 기생은 권주가를 부르면서 헌수를 성대하게 거행했다.’
기생은 아니라도 이름 모를 아주머니가, 악공은 없어도 친구들이, 풍악은 아니라도 젓가락 장단으로 권주가를 제대로 들은
산우회의 신사 도근회의 수연은, 친구들의 헌수 속에서 멋지게 끝나가고 있었다. 근회야! 회갑을 축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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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09 청계산산행 및 오재홍 혼사뒤풀이
아파트를 나서는데 주차장에 새워둔 차들에 비가 홍건하다. 간밤에 비가 왔나? 뒤에
들어니 어떤 지역은 새벽에 어떤 지역은 아침에 천둥벼락까지 치면서 소낙비가 한번 짜들었단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잤으니 간밤은 한심 푹 잔 모양이다.
청계산 원터골에서 버스를 내린다. 원터골에는 시골에 있었으면 서낭나무가 되고도 남을 커다란 느티나무 두
거루가 버스길을 사이에 두고 서있다. 느티나무아래에서 만나자고 했으니 어느 느티나무인지 살핀다. 버스가 오던
쪽 그러니까 주차장이 있는 쪽 느티나무로 백금석과 최영순부부가 막 길을 건너오고 있다. 이승배는 나와 버스를
같이 타고 왔고, 이상철은 접이우산이 아닌 기다란 우산을 들고 왔고, 처사촌 쪽에 결혼식이 있다는 박홍식이를
떼어놓고 방석순이는 혼자 왔다. 장웅태, 원정상, 어제 아들의 결혼식에서 아들만큼이나 젊어 보였던 회장
원호연도 왔다. 오늘 산행 후 뒤풀이는 호연이 차진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조금 늦는다고 연락이 온 최홍이와 김동인을 기다리는데 아래 위 까만 등산복을 입은
오재홍이 버스에서 내려 이쪽으로 온다. 재홍이는 지난 8.25일 아들을 장가보냈다. 이제는
추마(추계마라톤대회를 마라톤맨인 이춘호나, 재홍이가 쓰는 말)를 대비하느라 시간여유가 없을 텐데도 오늘 굳이
참석한 걸 보면 혹시 혼사 뒤풀이? 그랬다. 산행 후 뒤풀이를 맡겠단다. 호연이의 뒤풀이는 하는 수 없이
다음으로 밀린다.
고속도로 아래로 뚫린 길을 따라 옥녀봉으로 향한다. 오랜만에 온 원터골도 이전의 원터골이 아니다. 초입의
오른쪽에 있었던 유명한 해장국집도 땅 주인이 들어와서 새로 지었다는 멋진 2층짜리 식당으로 바뀌었고. 양쪽
길가로 즐비했던 손두부집들도 이제는 등산장비 매장으로 바뀌어 이전의 분위는 남아 있지 않다. 가는 세월 속에
뭔들 안 바뀌겠는가.
이 동네 토박이인 원정상군의 말에 의하면 육이오사변 때 이곳 청계산으로 피난을 왔었다 한다. 폭격에 대한
피난이냐, 인민군에 대한 피난이냐 물었더니 인민군에 대한 피난이었다 하니 청계산은 육이오사변 때만해도
인민군을 피해 피난을 올 정도로 상당한 오지였던 셈이다. 지금은 강남과 분당이 개발됨에 따라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우리처럼 등산배낭을 메고 등산을 오는 사람도 있고 간단히 운동화차림으로 산책을 오는 사람도 있다.
오늘 등산은 코스가 짧아서 중간 중간에 괜히 자주 쉰다. 벌써 한번을 쉬었는데 몇 발짝 못가 어둔골
약수터에서 막걸리 마시자고 쉬고, 또 얼마 못 가서 정자가 있다고 쉰다. 정자에서 곧장 오르면 바로
옥녀봉이니 너무 짧고 싱겁다고 약간 우회하기로 하고 좌측 길로 들어 섰더니 계단이 나온다. 양편에는 밧줄로
손잡이가 있고, 큰 통나무를 사각지게 잘라 뉘어 놓아 산에 있기는 아까운 계단이다. 계단의 세로면 오른쪽으로
가로 25센티, 세로 15센티미터 정도 되는 소위 말해서 태그가 하나씩 붙어있는데, 각가지 사연들이 적혀
있어서 이 계단을 ‘사연이 있는 계단’이라고 한단다. 찬찬히 읽어보면 재미있는 사연도 있으련만 무심히 그냥
계단을 오른다.
그럭저럭 옥녀봉에 다 달았는데 말이 옥녀봉이지 상상하고 올라 왔던 봉우리는 아니다. 이전에는 봉우리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넓고 평편한 헬기장이다. 헬기장이니 가운데 바닥에 크다란 'H'자가 흰색 페인트를 뒤집어
쓰고 있고 한쪽 켠에 비를 맞아 귀퉁이가 벌어지려는 합판 쪼가리에 아무렇게나 쓴 글씨체로 옥녀봉이라는 글이
쓰여진 말뚝이 비스듬히 박혀 있을 뿐이다. 헬기장이니 높은 구조물은 설치할 수 없겠지만 구석구석이 잘 손질
되어 있는 청계산 답지가 않다. 아마도 공식 지도에는 어쩌구 저쩌구 헬기장을 표시되어 있을 테고 등산안내판에나
옥녀봉이라는 봉우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본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부근에서 점심을 먹는다. 어제 결혼식을 치른 호연이가 혼주 먹으라고 별도로 싸 주더라면서
홍어 무침을 왕창 꺼내고 반 쯤 얼린 PET병 맥주도 2병을 꺼낸다. 올 여름 산우회용으로 대형 마트에서
사둔 박스 때기 맥주에서 마지막 남은 2병이란다. 승배가 갖고 온 바이킹타입의 주석 잔으로 맥주를 마신다.
몇몇은 호연이가 제임스일병이 쓰던 컵이라고 주장하는 1945년생 미군 수통 컵에 맥주를 부어 마신다. 여름도
가고, 가는 여름을 따라 그 시원하던 맥주 맛도 갔다그야말로 맥주 맛이 가고 나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웁내다.
‘그놈의 자식이 말이야 밤 2시에 싱가폴에 잘 도착 했다고 전화가 온거야. 중간에 깨서 잠이 와야지‘
신혼여행지에 잘 도착했다고 아들부부로부터 온 전화 때문에 잠을 설쳤다는 호연이는 깔판위에서 잠을 청하고
여기저기 자유스러운 자세로 흩어져 담소를 즐기는데, 장웅태, 이상철, 김임섭은 활명수 빈병을 재떨이랍시고
들고는 으슥한 곳을 찾아간다. 쟤네들은 언제 아악하고 철이 들레나.
이제 하산길. 별로 오르지도 않았으니 하산길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긴 하지만 그래도 탄젠트값이 마이너스이니
하산길은 하산길이다. 개나리골로 내려가면 약수터도 있고 탁족을 할만 한 계곡도 있다는데, 버스정류장이 멀다고
화물터미날 쪽으로 코스를 잡는다. 화물터미널까지 한 20분 정도 걸린다하니 완전히 소 걸음으로 천천히
내려온다. 주등산로에서 ‘입마춤 길’을 지나 돌탑쉼터에서는 퍼 대고 쉬다 화물터미날로 내려온다.
처음에는 양재동에서 뒤풀이를 하자고 했으나, 하산길에서 가까운 화물터미날 뒤쪽의 돼지갈비집으로 들어간다.
돼지갈비도 시키고 오리훈제구이도 시켜서 맥주와 소주를 마신다. 아까 산에서 뒤풀이에 오겠다고 연락이 온
김창민교수는 교회에서 집에 들어와 버려서 오기 어렵다고 했고, 오늘 벌초작업을 했다는 이춘호는 중간에
합석했다. 계산은 물론 재홍이가 했고 만원씩 거둔 회비는 총무가 낼름했다. 오늘은 모처럼 아무 일 없이 각자
집으로 간 것 같다.
재홍아 아들 결혼 축하한다. 그리고 돼지갈비 맛있게 먹었다. Thank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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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23 수리산산행기 및 원호연혼사
뒤풀이
1. - 9월 23일 10시, 안양역앞, 날씨 화창
- 토요일부터 시작된 5일 연속 추석연휴
2. - 추석연휴라서 적은 인원의 우려를 깨고 12명 참석
- 원호연회장 혼사 뒤풀이를 오늘 하기로
- 오랜만에 김강복 참석. 지난 겨울 도봉산에서 다친 왼팔이 아직 시큰거린다고.
- 원호연, 백금석, 유희봉, 박홍식, 방석순, 최영순부부, 이상철, 도근회, 원정상, 김강복, 김임섭
3. - 10시 15분 수리산 현충탑쪽으로 도보 이동
- 중간의 안양중앙시장은 추석대목인데도 한산. 아침이 이른 탓인가?
- 떡집은 각가지 모양으로 자태를 뽐냄. 유희봉 떡을 사고
4. - 현충탑 뒤켠에서 첫 번째 휴식하고 관모봉 쪽으로
- 산길중간에서 4명이 본대와 이탈하여 다른 길로
5. - 관모봉에서 4명을 기다리느라 한참을 휴식. 결국 태을봉에서 합류하기로
6. - 태을봉에서 합류, 사진 찍고 부근에서 점심 먹고
- 백도사가 지난주 중국 갔다 온 기념 고량주로 반주
- 하산 길에 이상하게 다섯명이나 미끄러짐
7. - 병목안쪽으로 내려오다 개울에서 발 씻고,
- 원회장 혼사뒤풀이를 병목안쪽의 두부집으로 가느냐, 시내 횟집으로 가느냐 설왕설래
- 결국 창박골에서 버스를 타고 안양 시내 횟집으로 이동
8. -‘공주회센타’에서 전어, 개불, 광어, 등으로 소주와 맥주
- 노래방으로 이동하여 한 곡조씩 뽑고 깜깜할 때 각자 집으로
9. - 원회장! 가을 전어 잘 먹었습니다. Thank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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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30 삼성산 산행기
서울대 정문 옆의 관악산 입구역에 버스를 내렸더니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매표소 옆 식당가에서 김밥을 한 줄 사서 배낭에 넣고 우리들의 모임장소인 관악산입구 일주문 쪽을 향하는데
이상철을 만난다. 그쪽 동네에서 같이 오던 배금석은 집에 일이 있어서 못 오고 최영순부부는 늦은 성묘를 가서
혼자라 한다. 일주문 하단석에 민경은이 도사처럼 앉아 있다가 우리를 반긴다. 민경은은 작년겨울 눈이 오는
관악산에서 마지막으로 보고 오늘이 처음이다. 오랜만에 봤는데 혈색이 환하게 좋아서 고맙다. 김동인, 도근회,
박홍식, 방석순, 원정상, 원호연, 유희봉, 장웅태 모두 11명이 모였다.
오늘은 관악산쪽 보다 삼성산으로 가보자고 제의 했더니, 회장이 OK한다. 일주문을 나와 광장 오른쪽의 주차장
쪽으로 이동하여 아파트와 관악구민회관사이로 난 길을 따라 가면 채전밭이 있던 자리가 조그만 공원으로 꾸며져
있고 공원을 벗어나면 바로 산행길이다. 이 코스는 사람들이 잘 몰라서 일요일이라도 한적하고, 암봉도 중간
중간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코스이다.
얼마 오르지 않으면 축대 위에 오래되 보이는 무덤이 나온다. 지난봄에는 깨끗하게 다듬어져 잔디가 깨끗하더니
이번 추석에는 손을 보지 않았는지 여기저기 잡풀이 섞여있어서 지저분하게 보인다. 나도 죽으면 이런 모양
이려나? 햄릿의 유명한 독백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그
다음 다음 쯤에 이어지는 독백, To die, to sleep, No more: (죽는 것은 잠드는 것. 그
뿐이다.) 죽는다는 것, 잠든다는 것... 무덤가에 앉아 잠깐 쉬는 사이에 스치는 생각. 나도 나이가 든
탓인가?
이쪽 칼바위 능선은 6개의 숨이 찬 코스가 있다. 첫 번째는 급 경사였었고, 두 번째는 암봉인데 바위 틈새로
묘하게 난 길을 따라 숨차게 오르면 흰 페인트로 王門峰이라 쓰인 바위가 있다. 자세히 보면 王자에 점이
있었는데 누군가가 지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그냥 옥문봉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옥문봉에
오르면 갑자기 시야가 툭 터져서 왼쪽으로는 서울대학교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오른쪽으로는 아까 지나쳐 온
아파트단지가 내려다 보여 여름에는 다들 여기에서 한숨을 돌리는 곳이다. 오늘처럼 이 옥문봉에 비가 와서 젖어
흐르면 이 물은 옥수?
네 번째 암릉이 제일 길고 경사가 급하다. 헉헉대고 올라가서 막걸리를 마신다. 다섯 번째 암릉은 칼바위. 말
그대로 뽀쪽하고 위험해서 맑은 날에도 가끔 119헬기가 날아오는 곳이다. 비는 개였지만 아직도 바위는
젖어있어 우회하기로 한다. 뒤에 들으니 우리 일행 중에 3명인가가 칼바위를 올랐다 한다. 대단한 담력이다.
여섯번째 암릉을 오르면 제1야영장이라는 곳인데 이름 그대로 축구장이 두어 개는 들어 갈만큼 평편한 조그만
고원지대다. 우리는 여기를 못미처 산길에서 왼쪽으로 들어가 전에는 뭘 했던 자리인지 군데군데 돌로 둥글게
띠를 둘러 잘 다듬어 놓은 곳에서 밥을 먹는다. 민영감이 북경 갔다가 친구들 주려고 사왔다는 알콜도수
56%짜리 이과두주가 비와 땀에 젖어 으시시한 한기를 싹 가시게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쪽 코스로 올 때는 도시락이 필요 없었다. 이 고원 여기저기에 막걸리 주보도 있었고,
산채나물 비빔밥집도 한둘이 아니었다. 심지어 육개장을 파는 집도 있었다. 가끔 구청직원이 나와서 단속해
좌판을 부셔놓고 가면 잠시 그때 뿐, 숨어 있다가 이내 장사를 계속 하곤 했었다. 산 정상에 밥집이 있었으니
간편하긴 했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는데, 작년에 구청에서 노점상 단속을 용역을 준 이래로 노점상들이 다
없어졌다. 우리가 밥 먹는 자리의 앞 쪽에도 안동이 고향이라고 했던 젊은 부부가 막걸리 주보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요즈음 무얼 하며 먹고 살고 있을까?
밥을 먹고 일어서 제1야영장을 지나고 T자길 갈림길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호압사를 지나 시흥, 독산동 쪽으로
내려가게 되고 왼쪽으로 가면 삼막사로 가는 길이다. 갈림길에서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삼막사 쪽으로
간다. 삼막사를 자주 오는 등산객도 삼성산은 잘 모르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삼막사는 삼성산에 있는 절이고,
삼성산은 관악산에 연이어 있는 관악산의 아우 뻘 되는 산이라서 잘 모르는 사람은 그냥 삼막사봉우리라고 하기도
한다.
능선을 쭉 타고 가다가 약간 오르막을 오르면 밧줄을 타고 올라야하는 암벽이 있는데 몇 명은 우회하기로 하고
암벽을 오른다. 암벽을 오르면 T자 갈림길인데 오른쪽으로 가면 삼막사가 지척이고 삼막사에서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내려가면 안양이다. 우리는 서울대쪽으로 내려가는 왼쪽 국기봉 쪽으로 코스를 잡는다.
국기봉도 암봉인데 약간 아슬아슬하여 재미가 있다. 국기봉을 올라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는다. 삼성산에는
국기가 꽂힌 암봉이 몇 개있다. 우리가 지나왔던 옥문봉에도 국기가 꽂혀 있었고, 칼바위에도 국기가 꽂혀있어서
일행을 잃어버린 초행 등산객들이 국기가 꽂힌 봉우리가 어디에 있냐고 물으면 당황해진다. 하여튼 국기봉을 지나
병풍바위 쪽으로 간다. 병풍바위는 90도로 깎아지른 암벽이라 바위사이에 박혀있는 쇠밧줄을 잡고 조심조심
내려온다. 내려와서 올려다보니 앞으로 자빠질 듯, 말 그대로 병풍바위다. 군데군데 락크라이밍용 고리들이
박혀있는데 이걸 뭐라고 하는지 호연이에게 물어볼걸 그랬나 보다.
이제 별로 특징도 없는 하산 길. 철쭉광장도 지나고 제2광장도 지나 다시 관악산 일주문에 다 달았는데
왼쪽으로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음식점이 죽 늘어서 있던 자리에 화단을 만들고 야생화를 이쁘게 키우고 있어서
들어가 본다. 구절초, 연, 수련은 알겠는데 나머지는 몇 번이나 들어도 잊어버리는 꽃 이름들이다. 어떤 놈은
파란색 꽃을 어떤 놈은 붉은 꽃을 야단스럽지 않게 피워서 좋은데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이상한 음악소리가 귀를
거슬린다. 시원찮은 앰프에 있는 대로 볼륨을 올려 스피커가 찢어지는 듯 뿜어내는 소리에 참다 못한 석순이가
관리자에게 가서 뭐라고 하는 걸 저 만치 떨어져서 보고 있었더니 말이 잘 안 통하는 눈치다. 야생화 전시장을
나와서 메인 길로 들어섰는데 음악소리가 감자기 멈추더니, ‘음악소리가 크다고 생각하거나 듣기 싫은 사람은
들어오지 마시오.’라고 스피커가 악을 쓴다. 아까 석순이의 얘기가 고깝던 모양이다. 그래도 그렇지 참,
고약한 이놈의 세상.
관악산 입구 버스정류장을 건너 무슨 학교의 담을 끼고 들어가서 털보네라는 오리고기집으로 들어간다. 한 여름에
상철이를 따라 와 봤던 집이다. 오리고기로스를 시켜서 맥주와 소주를 축낸다. 신림사거리로 버스를 타고 오는
중에 어쩐 일인지 희봉이가 노래방엘 가잔다. 신림사거리 노래방에서 희봉이, 웅태, 상철이랑 네명이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아주 깜깜할 때 집으로 흩어져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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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007 검단산 산행 보고서
1. - 10월 7일 10시 검단산입구 에니메이션고교앞 집합
- 일기예보는 오후부터 비. 아침 날씨는 햇빛이 눈부시게 화창.
- 10시 서울지역 온도 22.5도
- 검단산입구 에니메이션고등하교 앞 집합.
2. - 모처럼 설정구 참석
- 방석순, 백금석, 장웅태, 설정구, 이우철, 최홍, 원호연, 김동인, 김임섭, 유희봉, 박홍식,
이상철(사진의 뒷줄 왼쪽부터) 12명
3. - 검단산은 능선이 3개 있는 홑산
- 등산안내도에 의하면
1코스 (2.82㎞): 검단산입구 - 유길준묘소 - 정상
2코스 (3.12㎞): 검단산입구 - 현충탑 - 약수터 - 정상
3코스 (3.52㎞): 산곡초등학교 - 돌탑휴식처 - 정상
- 1코스로 올라서 3코스로 내려오기로 함.
4. 10시 10분 유길준묘소 쪽으로 등반 시작
- 평편한 능선길이 없어서 아기자기한 맛이 없는 등반
- 에니메이션고 2.54㎞, 검단산 0.98㎞라고 쓰인 이정표 앞에서 막걸리 휴식
- 이정표 거리(2.54 + 0.98 = 3.52㎞)와 등산안내도의 거리(2.82㎞)가 틀림
- 12시 30분 검단산 정상 못미처 점심식사
- 낮잠시간 생략
5. - 검단산 정상에 도착 후 비석 앞에서 일동 증명사진
- 3코스 산곡초등학교 쪽으로 하산
- 돌탑휴식처에서 휴식
- 잠깐 내려오다 개울에서 탁족. 금년 마지막 탁족?
6. - 산곡초등학교 앞 버스정류장 도착(3시 50분)
- 버스유리창에 보슬비
- 설정구 먼저 집에 감
- 천호동 오거리에 하차
7. - 동해수산 횟집에서 전어구이, 전어무침, 전어회, 오징어회를 포식
- 매운탕 시켜서 저녁까지 잘 먹음
- 먹는 도중에 소낙비 엄청 오고
- 처음처럼2병, 참이슬 7병을 깟는데 경품당첨자가 없어도 화기애애하게 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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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021 상장능선 산행기
오랜만에 그린파크 앞에서 미리 온 사람끼리 황산의 얘기랑 북해도의 얘기를 하고
있는데, 민경은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북악터널 앞 평창동에 와 있는데 우리 일행이 아무도 없어서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집합장소가 그린파크라 택시를 타고 급히 갈테니 기다려 달라는 전화였다. 모처럼 민영감의 말씀이니
기다릴 수밖에. 오늘의 일행은 사진의 뒷줄 왼쪽부터 박태국, 이춘호, 오재홍부인, 길영순, 이상철, 민경은,
원호연, 최영순, 오재홍, 김창민, 문시헌, 김임섭, 박홍식 이상 13명.
오재홍은 10월 28일 추마(추계마라톤대회)준비의 일환으로 컨디션 조절을 조절하기 위해 참석했고, 김창민은
상장능선을 등반한다니 기회라고 참석, 모처럼 참석한 길영순은 앞으로 산우회에 자주 참석하겠다고 했다.
상장능선은 휴식년과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출입이 묶여 있다가 풀린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한다.
그린파크 앞을 지나 좀 오르면 산행길은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우이암 쪽으로 가서 자운봉
쪽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가면 용덕사를 지나 육모정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는 육모정으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아직 단풍이 들기에는 계절이 조금 이르지만 성질 급한 놈들은 벌써 파란 잎이 누르스름하게 변해가고
있다. 조금 오르다 여기는 사유지입니다 라고 쓰인 오크벨리 주차장에서 추울까봐 껴입고 온 등산점퍼를 벗는다.
춘호와 호연이는 아예 겉옷을 벗어 제치고 지난번에 산우회에서 나누어준 기능성 런닝 바람이다. 다들 춥지
않으냐고 한마디씩을 건낸다.
한 30분을 올랐나 얼마 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육모정고개다. 육모정고개는 북한산 능선 중에서 제일 낮게
능선에 오를 수 있다고 회장 호연이 설명한다. 육모정고개의 평편한 곳에서 막걸리를 마신다. 안주는 호연이가
북해도에서 사온 소금가미 볶은 큰 콩과 길영순이 항주에서 사온 녹차캔디다. 막걸리는 국산이고 안주는 일제와
중국제니 우리 뱃속에서는 자동으로 동아시아의 융화가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육모정고개에서 왼쪽으로 가면 영봉으로 가는 길이지만 우리는 반대편에 있는 송전철탑을 끼고 상장능선 길에
접어든다. 12시를 조금 넘어 평편한 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임섭이가 황주에서 사온 35도짜리 오량순과
43도짜리 황산이라는 베갈 때문에 소주병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이제는 본격적인 상장능선 탐방이다. 상장능선에는 9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육모정에서 가면 9봉에서 1봉 쪽으로
내려가게 된다. 상장9봉은 왕관봉으로도 알려진 암봉이다. 바위를 타고 올라가 매여 있는 밧줄을 의지하여
바위틈을 아슬아슬하게 내려갔더니 어매, 길이가 제법 되는 내리막 경사 바위길이다. 이 경사길은 올라오기는
하겠지만 내려가기에는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 춘호는 듬성듬성 그냥 내려갔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회장 호연이의
말에 따라 다시 후퇴한다.
9봉인 왕관봉을 우회하는데, 갑자기 문시헌이 뱃속이 거북하다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길에 들어 눕고 만다.
찬바람을 쐬면서 먹었던 점심이 급체로 변한 모양이다. 호연이가 손을 따고 누군가가 비상용으로 갖고 온
활명수를 먹이니 얼굴에 화색이 조금 돌아온다. 이제 삼각점표지가 있는 전망대를 오른다. 오른쪽으로는 신선대
빼놓고는 맨날 들어도 잊어버리는 도봉산의 봉우리들이 죽 늘어 서있고 그 왼쪽으로는 여성봉을 위시한 오봉이
멋지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반대쪽으로는 영봉과 삼각산의 세 봉우리와 숨은벽, 염초봉, 더 뒤로는
의상봉능선까지 훤히 보인다. 북한산의 뒤통수를 처음으로 한눈에 보고 있는 것이다. 지나가는 등산객에 부탁하여
일동 사진을 찍는다.
3봉도 암봉인데 오르기가 만만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억지로 오를 수는 있겠는데 초행길이니 반대쪽 내리막이
어떤 사항인지 알 수가 없다. 호연이와 길영순등 5명은 바위길로 오르고 나머지는 우회길로 간다. 3봉을
올라보니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바위 내리막길 없이 그냥 평탄한 길이다. 일행 모두가 올라와도 될 뻔했다.
우회길과 만나는 합류지를 지나 우회팀들이 먼저 갔으려니 하고 부지런히 걸어 내려가다 우회팀에 전화를 걸어보니
길을 잘못 들어섰는지 사기막골로 내려가는 길인 것 같단다. 거꾸로 다시 올라가서 합류를 하겠다한다.
1봉도 지나고 폐타이어로 만든 참호까지 내려와서 한참을 기다리며 연락을 해도 우회팀을 만날 수가 없다. 길이
완전히 어긋난 모양이다. 송추 구파발 도로에 닿아 서로 연락하기로 하고 솔고개를 지나 하산한다.
솔고개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사기막골 정류장 하나 앞에서 우회 팀을 만난다. 불광동까지 버스로 나와
골목 입구에 먹자골목이라는 커다란 아치가 있는 골목의 끝쯤 되는 곳에서 아구찜으로 소주를 곁들여 저녁도 먹고
불광전철역에서 각자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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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028 총동창회북한산산행 참가기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조금 전에 신용산 지하철 승강장 게시판에서 읽었던 김영랑의 시 “오매, 단풍 들것네”를 수유동으로 가는
4호선 전철 안에서 배낭을 앞으로 끼고 앉아 이렇게 멋진 시어를 고를 수 있는 시인들을 새삼 부러워한다.
우이동 버스종점에 내렸더니 도선사로 오르는 길에 사람들로 빼곡하다. 버스 종점에서 도선사를 오르내리는
합승택시를 탄다. 앞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지난주에 황학산을 갔었는데 주차장이 대만원이라 대절해간 버스를
주차장에 대지를 못해 갖고 간 음식을 멀리 도로가 에서부터 들어 나르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푸념한다.
할렐루야 기도원 정문으로 들어가 접수대에 접수를 한다. 등산용 접이의자와 도토리묵을 하나씩 받고 덤으로
나무뿌리가 패인 골에다 뿌리라고 모래주머니도 하나 받아서 우리 팀이 모인 곳으로 간다. 오랜만에 노재민이가
왔다. 반갑다. 박홍식으로 부터 전화가 온다. 도범식과 같이 오는데 조금 늦겠단다. 도범식과 도대식은
알다시피 쌍둥이다. 한명은 좀 뚱뚱한 편이고 한 명은 보통 체격인데 우리는 둘의 이름이 헷갈린다. 금석이가
둘의 구분법을 알려준다. 보통 체격의 소유자는 대나무를 연상하여 도대식이고 뚱뚱하면 범식이란다. 대식이는
몸이 날렵하여 아직도 평행봉에서 대차를 하고, 범식이는 뚱뚱하지만 노래방에서 춤출 때 아주 유연하게 웨이브도
된다고 덧붙인다.
오늘의 참석자는 사진의 뒷줄 왼쪽부터 도대식, 노재민, 김동인, 박홍식, 김임섭, 백금석, 원호연, 최홍,
최영순부인, 최영순, 최정길, 박태국, 이상철 그리고 사진을 찍고 있는 민경은 모두 14명이다.
옹기종기 모여 있다가 각 회기별로 자유스럽게 산으로 출발한다. 기도원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든다. 앞에 가는
팀도, 뒤를 따라 오는 팀도 모두다 아까 접수대에서 받은 일회용 끈끈이 명찰을 모자에 붙인 사람들 이니,
오늘은 이 길을 경복이 전세 낸 것 같다. 洗心臺 약수터에서 잠시 쉰다. 먼저 와서 쉬고 있는 36회
선배들의 속으로 끼어 들어가 앉는다. 우리 일행과 낯익은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악수도 하고 서로 안부를
묻는다.
여기서부터는 능선에 붙을 때까지 급경사길이다. 급경사 길이다보니 중간 중간에 가다 서다를 하는 사람도
있으니, 여러 졸업횟수가 앞뒤로 섞여서 오르게 된다. 선배님은 우리보다 한참 선배인데 우리보다 산을 잘
탄다는 둥, 데리고 온 애기가 외손자냐 친손자냐고 물어보고는 어따 그 녀석 크면 엄홍길이 되겠다는 둥 덕담도
주고받으며 능선까지 올랐는데 우리 팀의 본대가 올라올 생각을 않는다. 아마도 중간에서 막걸리로 땀을 식히고
있나보다.
땅바닥에 퍼대고 앉아 본대를 기다리는데, 전화가 온다.
‘41회 시지요.‘
’예 그런데요...‘
’나 응응응 인데 너희들 어디에 있냐?‘
이름을 대기는 하는데 산에서 받는 전화라 말소리가 들락날락하여 알 수 가 없으니, 존댓말을 써야할지 평상말을
써야 할지 순간 당황스러운데,
’응 중간에 막걸리 마시고 있는데, 너는 어디에 있냐?‘
라고 하고 본다. 집합장소인 헬기장에 있단다. 우리가 갈테니 기다리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도대체 어떤
얼띤 녀석이 할렐루야 집합장소에서 우리를 만나지 못하고 행사 장소에 먼저 가있단 말인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본대를 만나 능선에서 스피커소리가 왁자지껄한 쪽을 찾아 내려갔더니 보성고등학교 산우회 모임이다. 여기도
에지간이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무대 쪽에는 꼬마들이 죽 나와 서있고 사회자가 나이를 묻고 있다. 아마 제일
어린 꼬마에게 무슨 상품을 줄 모양이다.
보성고등학교 팀의 사이를 빠져나와 우리들 모임장소에서 아까 전화로 우리를 찾았던 얼띤 친구를 만난다.
최정길이다. 지난 여름에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다고 인터넷 게시판에 인사말을 올렸던 고3때 나의 짝궁이다.
여기저기 점심자리를 둘러보지만 늦게 도착하였으니 좋은 자리를 고를 것도 없이 그냥 적당한 자리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다. 아래에서 나누어준 묵을 안주로 백도사가 황주에서 갖고 온 백주를 마신다.
이제 공식 행사장. 우리는 인원이 몇 명되지 않으니 열을 지을 것도 없이 본대의 왼쪽 켠에 엉거주춤 모여
앉았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먼저 간 선배들에 대한 묵념 등 공식적인 절차가 끝나고 이어서 진행된 졸업회수별
경품추첨도 꽝, 개인별 경품추첨도 꽝이다. 손자라도 데리고 왔으면 색연필 셋이라도 받은 사람이 있으련만 우리
팀은 완전히 빈손으로 일어나서 엉덩이 먼지를 툭툭 턴다.
별로 신나지 않은 마음으로 용암문을 거처서 하산을 했고 버스종점근처에서 우리두부집인가 하는 봄에도 들렸던
두부집으로 들어간다. 넓은 홀에 빈자리가 없다. 잠시 기다렸다가 이쪽과 저쪽으로 두 팀으로 나뉘어 앉아
두부전골로 소주를 마신다. 노재민이가 오래만에 나왔다고 식비는 자기가 부담하겠단다. 다들 우와하고 인사치레를
한다. 오늘 처음 나온 최정길이는 다음 주 도봉산 산행 후 자기 집 공동목욕탕에서 샤워와 뒤풀이를
담당하겠다고 예약을 한다. 총무는 오늘의 회비뿐만 아니라 다음 주 회비까지 챙길 수 있어 입이 헤벌레해졌다.
제법 얼큰해져서 바깥을 나왔더니 이미 어두웠고, 들어 올 때 내렸던 보슬비는 그사이에 빗방울이 제법
굵어져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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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104 도봉산 산행기 (최정길
수연)
울긋불긋 등산복을 차려 입은 사람들 틈에 섞여서 도봉산전철역 앞 횡단보도를
건넌다. 지난 9월부터 한주도 빠지지 않고 일요일이면 끈질기게 내리던 비도 오늘은 게였다. 구름 한
점 없는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선인봉과 자운봉이 멋지다. 사실 단풍만 보기로 치면 서울에 살면
설악산이나 지리산을 굳이 찾을 것 없다. 가벼운 차림으로 배낭 하나 훌쩍 매고 전철에 오르면 1시간
이내에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등 명산의 산자락에 데려다 준다. 산을 사랑하는
우리로서는 정말 복 받은 곳에 살고 있는 것 아닌가?
등산안내지도를 보며 회장 원호연이 오늘의 코스를 대충 설명한다. 용어천계곡을 따라가다가 관음암을 지나
도봉주능선에서 방학동 쪽으로 하산하잔다. 오늘의 등산객은 모두 15명. 사진의 뒷줄 오른쪽부터
민경은, 장웅태, 원정상, 백금석, 김동인, 방석순, 원호연, 박태국, 최영순, 도근회, 박홍식,
이춘호, 최정길, 유희봉 그리고 사진을 찍고 있는 김임섭.
사람들로 왁자지껄한 입구를 벗어나 광륜사 쪽으로 간다. 광륜사 앞에서 알밤을 구워 팔면서 맛보라고
하나씩 나누어주던 부부가 오늘은 없다. 단속 때문에 못나온 것인지 다른 산으로 단풍구경 간 것인지
궁금해진다.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 가다가 오른쪽에 있는 화장실을 무심히 힐끗 본다. 화장실에 이름이
있다. 나무그루터기를 세로로 켠 나무판이 출입구 위에 가로질러 놓여있는데 쌍줄기화장실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화장실에 이름이 있는 것도 별난 일인데 그 이름이 쌍줄기라니. 어하하 웃긴다. 쌍줄기로
일을 보라는 뜻인가? 쌍줄기로 일을 보려면 연장도 쌍이여야하지 않을까? 연장이 쌍이면... 그러면
여자 거시기는... 작은 볼일은 그렇다 치고, 큰 볼일도 쌍줄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혼자
피식 웃는다.
성도원을 지나 건천계곡을 오른쪽으로 건넌다. 여기서부터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다. 한참을 올라 주봉이
손에 닿을 듯한 곳에서 막걸리를 마신다. 막걸리를 마시고 나면 산길이 무척 힘들어진다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서로 한잔씩 마신다. 붉은, 노오란, 누우런 이런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만산홍엽 속에서, 잠깐 스치는 미풍에도 후두둑 떨어지는 낙엽 속에서 멋진 친구들과 한담을 나누며
막걸리를 마신다.
등산로에 낙엽이 제법 쌓여 길이 조심스럽다. 낙엽에 덮인 길이 미끄럽기도 하거니와 돌 틈 사이가
낙엽으로 덮여 허방을 이루고 있어 잘못 밟다가는 발목을 다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관음암을 오르는
경사길 돌계단을 열심히 오르는데 갑자기 뒤켠에서 어이쿠 하는 비명소리가 들린다. 김동인이가 올라오던
돌계단의 아래쪽을 보고 코가 거의 돌계단에 닿을 정도로 폭 꼬꾸라져 있다. 양쪽 손에 하나씩 스틱을
잡고 오르다 스틱 한쪽이 돌 틈새에 낀 것을 모르고 몸의 중심을 앞으로 이동하다가 스틱이 미처
따라오지 못하니 빙그르르 도는 듯 자빠졌단다. 양쪽 팔꿈치가 까지고 오른발 무릎과 장단지가 까져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래도 얼굴은 다치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관음암 왼쪽의 바위 틈새로 난 길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빠져나와 적당한 밥자리를 찾건만 조금이라도
그를 듯한 자리는 이미 차지하고 있어서 한참을 더 가서 겨우 비탈진 곳에 두 팀으로 나누어 앉기로
한다. 비탈 위쪽에 앉은 팀은 프랑스풍으로 호연이가 갖고 온 생굴에 꼬약을 마시고 아래쪽은 인절미와
송편 비슷한 떡에 장웅태가 갖고 온 중국백주 우량순을 마신다. 아까 넘어진 김동인의 상처가 제법
심각하다. 약도 바르고 밴디지도 붙인다.
식사도 끝났고 도봉 주능선을 따라 하산길이다. 능선 오른쪽으로는 오봉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고
왼쪽으로는 산 능선의 실루엣에 우이암이 톡 튀어나와 보인다. 우이동에서 오를 때는 그냥 커다란
바위이더니 이쪽에서 멀리 보니 영낙 없이 소귀 모양이다. 牛耳洞의 옛 지명이 소귀리인데 우리끼리라도
牛耳岩으로 부르지 말고 소귀바위라고하면 어떨까하고 생각해본다.
우이암이 가까워지자 이제 부터는 최정길이 앞장선다. 집이 방학동이고 보니 이 동네는 그야말로 정길이
나와바리(張り)다. 우이암을 못미처 왼쪽으로 빠지는 건 자주 다닌 길인데 오른쪽 언덕길로 빠져 보기는
처음이다. 이쪽저쪽을 살피며 한참을 내려갔더니 성당묘지가 나온다. 여기저기 길을 따라 흩어져 있는
묘지 중에서 카토릭식 까만 묘비에 ‘맛을 사랑하고 멋을 사랑한’으로 시작하는 묘비가 눈에 띄여 봤더니
백파 홍성유씨의 묘다. 백파는 조선일보에 연재한 별미기행 칼럼으로 유명했었다. 그러나 그도 세월
앞에는 별수 없이 먼저 간 아내 곁에 합장으로 영원히 쉬고 있다. 담배를 한대 피워 올리고는
담배연기가 잦아질 때까지 한참을 혼자 앉아있었다.
묘지를 벗어나 오리탕 집으로 정길이가 인도한다.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해두었는지 15인분 테이블이
깔끔하게 마련되어 있었고 민오리탕, 옻오리탕 그리고 삶은 오리고기로 소주를 마신다. 오늘의 이 성찬은
최정길이 내는 거다. Thank You 최정길.
어둑하여 큰길로 나섰더니 연산군묘의 건너 켠 방학동에서 우이동으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몇 명이서
출입구가 잠긴 연산군묘를 휘 둘러보고 왔더니 다른 친구들은 이미 버스를 타고 떠난 뒤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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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118 마니산산행기 (장웅태
회갑)
오늘은 세번째 일요일이니 먼산 산행이다. 행선지는 강화도마니산. 유희봉,
원정상, 이춘호, 방석순, 장웅태는 원호연 차와 박홍식 차에 나누어 타고 교대전철역 앞에서 출발이고
최영순, 백금석, 김임섭은 상철이 차를 타고 개봉역을 출발하였다. 강화도 남쪽에 새로 생긴 초지진교를
건너고, 전등사 앞을 통과하여 마니산 입구 함허동천 주차장에 서로 비슷한 시간에 도착했다.
회장 호연이가 주차장을 가로질러가서 막걸리를 사오면서 “여기가 강화도니까 강화도 인삼막걸리를 먹어야
안 되겠나”하는데 손에 들고 오는 막걸리 병이 눈에 설다. 하나는 투명한 한 되짜리 패트병이고 또
하나는 하얀색으로 호리병 모양이다.
9시 40분에 매표소를 통과한다. 일인당 입장료가 1500원. 국립공원도 아닌데 무슨 입장료냐니까
국립공원이 아니라서 입장료를 받는다는데 할 말이 없다. 매표소를 지난 초입에는 길 양쪽으로 야영장이
깔끔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길 왼쪽으로 커다란 물탱크 앞 광장에는 간밤에 야영을 했는지 파란색과
초록색 텐트 밖에서 두서너명이 까치머리를 하고 서성거리며 침낭을 개는 모습도 보인다.
야영장이 잘 마련되어 예사롭지 않았기에 인터넷을 뒤적거렸더니 함허동천 야영장은 마니산 정상의 함허동천(涵虛桐天)의
바위에서 시작돼 동쪽으로 흐르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운동장, 샤워장, 야영장, 오락장, 화장실,
급수대, 전망대, 분수대, 매점 등 야영을 할 수 있는 모든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여름에는
천여개의 천막이 장관을 이루고...
야영장을 지나 거북모양을 기단으로 한 단검마니숭묘라고 쓰인 비석도 지나고 계곡 길과 능선 길로
갈라지는 곳에 다달았더니 등산안내판과 함허동천의 안내판이 있었다. 아침에 차를 타고 오면서 함허동천이
어쩌구 하길래 함허동천의 ‘천’을 내 딴에는 내천자로 생각하고 무슨 개울이려니 했더니 하늘‘천’로
函虛洞天이라 쓰고 그 뜻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이란다.
함허동천에는 전설이 있다는데, 출가 전 결혼을 했던 고려 말 조선 초기 승려 함허대사가 강화도
정수사에서 수도하던 중 아내가 찾아왔다. 함허대사는 세속의 번뇌를 벗고자 마니산 깊은 산기슭 커다란
바위에 ‘함허동(涵虛桐)’이란 세 글자를 새기고 있으면서 먼 길 달려온 아내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한번만이라도 보기 위해 기다리는 아내를 두고 ‘천(天)’이란 마지막 글자를 새기고 보니 아내는
이미 정수사 앞 깊은 바다에 몸을 던진 후였다. 아내가 목숨을 버린 그곳에서 갑자기 큰 물결이
일어나며 그 자리에 바위 하나가 솟아올랐는데 훗날 사람들은 그 바위를 각시바위 또는 ‘각시의 서’
바위라 부르기 시작했단다. 아직도 계곡의 너럭바위에 函虛洞天이라고 새겨진 글씨가 남아있단다.
능선 길과 계곡 길로 갈라지는 곳에서 우리는 능선 길 쪽으로 오른다. 산행은 초입부터 돌부럭의
너덜지대로 경사가 심하다. 조금 올랐는데 벌써 몸이 훈훈해저 겉옷이 답답하다.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얼마쯤을 올랐더니 한참을 앞서간 영순이가 바람소리가 심상치가 않다면서 겉옷을 꺼내서 도로
입는다. 나도 영순이를 따라 잠바를 입고는 능선을 돌아 나갔더니 어매 갑자기 추운 거. 삭풍이다.
나뭇잎이 다 떨어져 가지만 남은 나무가 휘어질 정도로 바람이 세다. 나는 언제쯤 영순이와 같은 지혜가
생기려나...
아침에 나보다 일찍 일어난 마누라가 아침 기온이 영하4도라며 겨울 등산채비를 내어 놓는 것을 이까짓
기온에 무슨 겨울옷까지 입냐면서 지난주에 입었던 차림으로 나왔는데 야 이거 정말 심하게 춥다.
호연이에게 귀마개까지 빌려 귀를 싸맸더니 조금 나아졌지만 그래도 춥다. 아침에 잘난 척하고 마누라
말을 안 들은 게 후회막급이다.
칠선녀교에서 바위능선길을 한 10여분 더 갔나? 참성단 중수비를 지난다. 중수비는 보통의 비석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위의 일부분을 평편하게 만들어서 글자를 음각한 커다란 바위 덩어리다. 옆에
서있는 안내판에 의하면 조선 숙종 43년(1717) 5월 강화유수 최석항(崔錫恒)이 당시 전등사 총섭(摠攝)이었던
승(僧) 신묵(愼默)에게 명하여 무너진 참성단을 수축케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는데 참성단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내력과 여러 번 고쳐놓은 사실, 제천단에 대한 선조들의 뜻 등을 기록하고 있다고 하는데 비문은
한 400년의 풍우를 견디어 왔으니 마모되어 내 눈에는 무슨 글자인지 한 자도 알아볼 수 없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 마니산 너덜바위길이다. 전에는 쇠줄로 된 가이드가 없어서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험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등산로를 따라 파이프를 박고 그 사이를 철제 체인으로 연결해 놓아 별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바람을 피해 남쪽으로 후미진 곳에 옹기종기 모여서 강화도
인삼막걸리를 마신다. 일반 막걸리에 인삼가루를 가미한 듯한 맛인데 이 추위에 바람을 피해서 마시느라
무슨 맛이고 어쩌고를 따질 겨를이 없다.
너덜바위의 제일 높은 곳 마니산의 정상이다. 강화도마니산이라고 쓰인 정상목이 정상을 알리고 있는데
말이 정상목이지 자세히 살펴보면 시멘트로 나무모양을 낸 것 같기도 하다. 사진의 뒤로 보이는 참성단은
일 년에 두 번만 개방을 한다 하니 마니산에 왔었다는 증명은 이 정상목 밖에 없어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 계속 붐빈다. 우리도 차례를 기다렸다 사진을 찍는다.
첨성단을 오른 쪽으로 돌아 내려가면서 밥자리를 찾는다. 마니산의 정상부는 온통 바위투성이라 평편한
곳이 없어 약간 경사진 곳에서 식사를 하고 이내 하산을 시작한다. 상방리 3.6km, 선수 4.3km로
갈라지는 곳에서 선수 쪽으로 하산 길을 잡는다. 잘 손질된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저 아래 바닷가에
펼쳐진 갯벌이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보이는 곳에 갯벌전망대가 있었다. 이 전망대에 있어야할 것 같은
갯벌에 대한 안내판은 엉뚱하게도 우리가 지나온 정상부의 너덜바위가 끝나는 곳에 있었었다.
강화도의 갯벌은 면적이 3,900만평으로 세계5대 갯벌중의 하나로 여기에는 조개, 낙지, 게,새우 등
다양한 해양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철새들의 기착지이기도 하다. 특히
세계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 노랑부리 백로 등 희귀한 철새 50여종이 도래하고 있다 이러한 갯벌은
수천 수 만년 동안 서해안의 큰 간만의 차와 함께 강이나 하천에서 떠내려 온 미세한 퇴적물이 쌓여
형성된 신비의 땅이다. 안내판의 내용이다.
계단을 다 내려오니 이때까지 아무 말도 안하고 있던 영순이가 ‘야 계단이 470개다’한다. 숫자를
잃어버릴까봐 내려오면서 아무 말도 못했다고 덧붙인다. 계단의 개수를 세면서 내려온 영순이는 역시 공대
출신답다. 헬기장도 지나고 시멘트로 포장된 산판도로 같은 곳에 도착하니 등산로는 끝이다. 산판도로를
건너 오르면 상봉산이란다. 우리는 하늘재 반대쪽으로 차들이 왔다갔다하는 아스팔트길을 향하여 산판도로를
내려온다.
중간에서 금석이가 어제 미리 연락을 해두었던 횟집으로 연락을 하여 산판도로가 끝나는 곳에 봉고차를
오게 한다. 봉고차를 기다리는데 가로세로 1미터는 됨직한 새장에 생전 처음 보는 새가 몇 마리
갇혀있다. 머리와 전체 색깔은 칠면조 암컷같이 생겼고 몸통은 거위를 닮았는데 목이 거위처럼 길지는
않다. 다리는 오리처럼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를 하고 있는데 무슨 새인지 이름을 모르겠다. 다들 이
새를 보며 한마디씩하고 있는데 봉고차가 왔다.
봉고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바닷가 식당동네에 있는 미락이라는 횟집이다. 이층에 올라갔더니 사람들이
제법 있다. 중짜 모듬회 3개를 시키고 앉았는데 미리 나오는 스끼다시가 유원지 음식점같지 않게 제법
걸다. 따뜻한 실내에서 건사한 안주로 소주가 몇 순배 도니 기분 좋게 취하는데 운전을 해야 하는
홍식이와 상철이는 술잔을 보고 눈만 껌벅이고 호연이는 춘호가 대신 운전하기로 하고 소주잔에 동참한다.
래원이가 지난 여름에 환갑 턱을 시작한 이래 뒤풀이 때면 몹쓸 악습이 하나 생겼는데 턱을 내지 않고
환갑을 지난 친구들에게 턱을 내라고 못살게 구는 것이다. 총무를 맡고 있는 임섭이란 놈은 한술 더
떠서 비용을 10% 보상해줄테니 턱을 내라고 성화다. 다들 반은 장난이라는 걸 알지만 당사자들은 한
두번 듣는 얘기도 아니고 몹시 괴로울 끼라. 오늘은 드디어 장웅태가 더 이상 못 참고 칼을 뽑았다.
오늘의 뒤풀이 비용을 장웅태가 부담했다는 얘기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얘기이며 타의 모범이 되는
얘기인가? 웅태야 고맙다. 덕분에 우리 산우회 기금이 또 두툼해졌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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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202 북한산 산행기 (유능화
회갑)
집 앞에서 162번 정능행 버스를 탄다. 핸폰을 보니 9시하고도 27분.
아침에 일찍 일어났지만 괜히 어정대다가 한일도 없이 늦었다. 운전기사에게 청수장 종점까지 얼마나
걸리겠냐고 물었더니 넉넉잡아 50분이면 된단다. 잘하면 데드라인 10시 15분 까지는 도착하겠다.
광교에서 종로를 가로질러 조계사 앞쯤을 통과하는데 박홍식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경복궁전철역인데 정능을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하느냐고 묻는다. 번호는 모르겠고 정능으로 가는 버스가 둘이 있는데, 국민대
앞은 안 되고 청수장행을 타라고 일러준다. 홍식이가 나보다 먼저 가면 내가 제일 꼴지가 되는데 하고
걱정을 한다.
이번에는 혜화동성당 앞을 지나는데 영걸이로부터 전화가 온다. 지금 혜화동을 통과하는데 조금 늦을지
모르니까 기다리란다. 나도 혜화동이니 같은 버스를 탔나 둘러봐도 영걸이는 없다. 으흠, 잘됐다.
영걸이가 나보다 늦겠구면, 저어기 안심이 된다. 10시15분 종점에 도착하여 황급히 청수장 쪽으로
갔더니 나름대로 짱구를 굴린 보람도 없이 이미 홍식이도 와있고 영걸이도 와있다. 결국 내가 제일 늦게
도착했다.
오늘의 등산멤버는 사진에서 뒷줄 왼쪽부터 장웅태, 김영걸, 김임섭, 백금석, 방석순, 유능화,
유희봉, 최영순, 박홍식, 원호연 모두 11명이다. 요즈음에 레귤러멤버가 된 이상철이는 전 직장의
OB팀 모임으로 산정호수에 갔고, 박태국은 못 간다는 메시지만 벌써 몇 주째다. 최정길이도 자주
나오겠노라고 방학동에서 한턱을 쏜 이후 아무 소식이 없다. 마나님의 예수사랑 때문에 일요일에는 교회를
가야만하는 영걸이는 딸래미가 지난여름에 벼락사고로 등산객이 죽은 위험한 곳이 아니냐며 딸래미가 기도
까지 바친 후에야 비로소 참석을 허락받은 모양이다.
이제 12월에 접어들었으니 완연한 겨울이라 그 예쁘던 Autumn Color도 언제 그랬더냐로
등산길에는 낙엽만 쌓여 수북하다. 영취사 조금 못미처 철봉과 평행봉이 있는 약수터 마당에서 잠간 숨을
돌린다. 호연이가 철봉에 발을 고정시키는 도구에 발을 집어넣고 거꾸로 매달려 몸 일으키기를 세 번이나
한다. 몸매가 통통하게 보여 한 번도 옳게 못할 것 같은데 가볍게 세 번을 하고 내려온다. 다들 눈이
휘둥글 해져서 한마디씩 칭찬을 한다. 이번에는 줄넘기 차례. 2회 뛰기에 호연이도 도전을 해보고
영순이도 도전을 해보는데 몸들이 예전 같지 않아 어쩌다 한번은 2회 뛰기가 되는데 연속해서 두 번을
하지 못한다. 이를 보고 있던 김영걸 노인네가 줄넘기를 잡더니 가볍게 대여섯 번을 성공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들보다 연식이 오래되 보이는데 보기와는 전혀 딴판으로 몸이 가볍다. 요새 Tell
Me라는 춤과 노래로 원더-Girl이라는 여식아이들이 방송에서 뜨고 있는데 우리 영-Girl도
대단하다. 김영걸 화이팅!!!
땀도 식었고 약수터마당을 지나 약수터 앞으로 오르는데 돌에 靈鷲泉이라고 새겨져있다. 대충 눈치로
영취천이라고 짐작해서 읽어보지만 鷲자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 새鳥변이니 무슨 새일 것 같다고 했더니
석순이가 수리취자라고 일러준다. 취라고 읽기도하고 추라고 읽기도 한단다. 그러고 봤더니 길 안내판에는
영취사로 표시되어있지만 영취사로 오르는 계단 못미처 왼편에서 있는 오석에는 영추사불사공덕비라고
새겨져있다.
영취사를 지나 능선에 올라 막걸리를 마신다. 겨울이라 오늘은 두병만 샀단다. 아껴 마셔야한다. 안주로
호연이가 배추꼬랑이를 거낸다. 대치동시장에서 주먹만한걸 6개에 만원을 주고 샀단다. 한개 반을 잘라
왔다는데 꽤 많다. 아작아작 씹히는 맛이 옛날 국민학교 시절의 김장 담글 때가 생각난다. 학교에 갔다
오면 이모와 할머니가 둘러 앉아 절인 배추에 속을 넣고 계시다가 제법 큰 배추꼬랑이를 먹어라고 주시던
외할머니 생각이다. 그때는 이 맛보다 조금 더 매웠었고 황토흙 냄새도 묻어 있었다. 눈치 없이 몇
개를 더 챙겨 꾸역꾸역 씹어 먹으며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을 한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가을만큼이나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아 밥자리잡기가 수월하다. 대성문에 이르는
막바지 나무계단을 남겨두고 단골장소에 밥자리를 핀다. 서로 자기 깔판을 꺼내지 않으려고 눈치를 슬슬
보는데 머리수가 한명이 모자란다. 영걸이가 없다. 영걸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나무계단을 지나서 무슨
문 앞이란다. 우리 밥자리를 지나쳐서 대성문까지 가버린 모양이다. 거꾸로 내려와서 여기저기 사람들이
앉아있는 곳에서 큰소리로 백금석을 불러라고 했더니 용케 찾아왔다.
오늘 점심은 호연이가 갖고 온 생굴이 인기다. 호연이가 손이 큰건지 호연댁 사모님이 손이 큰건지
호연이가 뭘 갖고 왔다하면 푸짐하다. 제법 큰 중자 프라스틱 그릇에 그득하게 담아온 생굴에다
초고추장을 부어 비버 놓으니 그놈 참 맛이 기차네. 찬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요때가 굴이 제일 맛있을
때가 아닌가. 서양친구들은 Raw Oyster를 무슨 최음제라고 먹는다는데 나도 제법 먹어놓았으니
오늘저녁은 무슨 소식이 올려나 어쩔려나? 위스키에 중국 백주에 마가목주에 얼큰하게 취기가 오른다.
우리산우회의 점심식사는 아무리 산에서 먹는 야전식이지만 그래도 디저트는 꼭 챙겨 먹어야한다. 임섭이가
갖고 오는 과일도, 석순이가 내 놓는 커피도 모두 디저트로는 무효다. 장웅태가 맨 마지막에 꺼내놓는
아이비비스킷을 먹어야 공식적으로 식사 끝이요 진짜 디저트다. 아이비만 갖고 오지 말고 치즈도 한번
같이 갖고 와보라고 성화지만 ‘허허허 이누무 시끼들이...’하고 웅태는 웃고 만다.
대성문 앞에서 잠시 쉬며 하산코스로 설왕설래한다. 12월은 예고된대로 환갑 턱의 연속이다. 오늘은
유능화 차례다. 어느 집을 갈 것인지를 정해야 하산코스가 정해질 텐데 등산시작 때부터 의견은
분분했지만 아직 정하지를 못 했다. 점심 먹은 지가 얼마 안 되니 일단 멀리가보자고 사모바위를 지나
비봉을 우회해서 향로봉을 못미처 구기동으로 하산코스를 잡는다. 금석이는 협심증 때문에 오르막은
힘들어하지만 하산코스는 비호다. 금석이가 앞장을 서서 자주 다닌 길에서 왼쪽 길로 들어섰더니 이내
호젓하여 사람들의 왕래가 뜸하다. 금석이는 산길도 도사다. 한참을 내려갔더니 지난봄에 시산제를 지낸
곳을 만났는데도 거꾸로 오는 길이라 눈에 설다.
이북오도청을 지나 아스팔트길에서야 목적지를 정한다. 불광동 먹자골목안의 아구찜집으로 가기로 한다.
지난번에 구파발로 하산했을 때 우연히 들렸다가 푸짐하고 맛이 있어서 기억해둔 집이다. 구기동에서
기자촌가는 버스를 타고 불광역에서 한 정거장 더 가서 버스를 내린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
남극회관이라고 쓰인 집으로 찾아들어간다. 푸짐한 아구찜을 접시를 앞에다 두고 맥주잔을 높이 들어
건배한다. ‘유능화의 환갑을 축하하며, 능화의 건강을 위하여!’
능화야 Thank You. 아구찜과 용봉탕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첫 번째 일요일만 말고 산에서 자주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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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209 청계산산행 및 백금석수연
우리 산우회는 회장이 한달간의 행선지를 미리 고지해놓고 해당 주에는
수요일에 자세히 홈피에 고지를 한다. 총무는 이를 보고 목요일에 SK텔레콤의 eStaion인가하는
것에서 그룹 핸폰 메시지를 발송하고 있다. 이번 주에도 목요일에 eStaion을 들어갔더니
업그레이드한다고 토요일 18시부터 가동된다는 안내글자만 커다랗게 번쩍거리고 먹통이다. 안되겠다 싶어
SK텔레콤의 소비자센터에 전화를 걸어서 상가 집인데 부고를 못 보내게 되었으니 이럴 수가 있냐고
따졌더니 죄송하다면서 급하면 네이트온이라는 걸 쓰라고 알려주는데 네이트온은 또 무슨 소리야, 그래서
백도사에게 전화를 걸어 여차여차하다했더니 백도사는 또 eStaion이 생소한 모양이다. 세상은 나만
모르는 사이에 편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이를 알아보자고 덤비면 눈이 윙윙 돌아 멀미가 날 지경이다.
각설하고 상기와 같은 이유로 토요일 오후를 기다렸다가 급하게 메시지를 보내다보니 홈피에 대공원4번
출구가 2번 출구로 고처진걸 모르고 4번 출구라고 그냥 보냈다가 4번 출구에서 한참을 기다린 4명이
메시지는 누가 보내는 거냐고 무지하게 칭찬들을 한다. 날씨가 고만고만해서 다행이지 왕창 추웠으면 아마
이글은 쓰고 있는 녀석은 그 자리에서 골로 갈뻔했다.
오늘 등산객은 사진 뒷줄 왼쪽부터 도근회, 김임섭, 원종상, 박태국, 이춘호, 이승배, 박훈신,
김동인, 원호연, 백금석, 유희봉, 박홍식, 최영순, 이상철 그리고 사진을 찍고 있는 방석순을
포함하여 15명이다. 장웅태는 장모님 생일이라 가족들끼리 점심약속이 있어서 못 온다는 연락이 왔다.
대공원 전철역 앞 광장 양쪽으로 봄에는 조잡한 중국제 장난감과 은색으로 번쩍이는 풍선을 파는
노점상들이 즐비 했었는데 겨울에 접어든 지금은 가로수도 앙상하고 대공원과 꽈배기가 무슨 연고인지
모르지만 하얀 설탕을 뒤집어쓴 꽈배기를 파는 노점상만 드문드문 있어 스산하다. 광장을 지나
스카이리프트 케이블카 승차장 빌딩의 오른쪽을 끼고 산길로 접어든다. 이쪽으로 오르면 과천매봉 또는
작은 매봉이라고 하는 곳으로 오르게 된다.
며칠 전에 눈이 온 탓으로 응달에는 눈이 쌓여있어 미끄럽다. 아까 전철역에서 도근회가 아이젠을 살 때
따라서 살걸 그랬나보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양쪽 발에 힘을 주고 걸어 올라가니 다리가 쉬 뻐근하다.
과천매봉 직전의 언덕쯤에서 먼저 올라간 금석이와 상철이를 만난다. 과천매봉의 고압송전선 철탑아래에서
잠깐 숨을 돌리며 막걸리를 비운다. 태국이가 한 알씩 나누어주는 밀크 카라멜을 입에 넣고 달게
오물거린다.
겨울철의 점심밥자리는 헬기장이 제격이다. 편평하고 양지발라서 좋다. 승배가 죽엽청주를 꺼내며 중국에
갔다가 공산당 간부가 타야한다고 예약된 비행기를 징발 당하고 미안하다고 항공사측에서 한 병씩 나누어
준 술이라고 사연을 얘기한다. 작년에 나누어준 덧신을 화제로 웃고 떠들며 식사를 끝낸다.
매봉을 거처 옛골로 하산했고 박래원과 최홍이도 다른 일행과 청계산등반 후 우리랑 합류했다. 마니님과
같이 하산길이었던 설정구는 술이 한잔 되었다고 그냥 갔고, 장웅태는 거금 2만5천원을 들여 택시를
타고 와서 합류했다. 부근 오리탕집에서 삼합과 오리탕을 시키고 맥주와 소주를 마신다. 오리탕을
주문하면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명색이 백도사 수연인데 그놈의 오리탕 기다리다가 소주는 다
마셔버렸고 느지막이 나온 오리탕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어선다. 산행 뒤풀이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집으로 가버리는 금석이는 오늘만은 예외로 양재동에서 여럿이 같이 밀러 생맥주를 마셨다.
금석아 60회 생일을 축하한다. 그리고 오리탕 잘 먹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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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216 삼성산 종산제
아침에 일어나서 일기예보부터 챙긴다. 최저기온 영하4도, 최고기온
영상4도. 겨울산행으로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라서 다행이다. 배낭을 메고 현관을 나선다. 배낭이
묵직하다. 어제 회장 호연이랑 남대문 등산장비시장에서 사온 종산제 기념품 때문이다. 종산제 기념품을
무엇으로 할지를 몇 주째 고민 고민하다가 겨우 지난주 산행에서 턱까지 내려오는 귀마개가 달린 모자로
여론이 모였다. 회장과 서로 시간을 맞추다 보니 바로 어제 토요일 남대문시장으로 쇼핑을 가게
되었는데, 브랜드가 있고 괜찮은 물건은 가격이 만만찮다. 이집 저집을 들리다가 에크로바 매점에서 개당
2만원선에서 귀마개가 있는 모자를 골랐더니 이번에는 수량이 모자란다. 하는 수 없이 몇 집을 더 들려
모자와 목도리로 쓸 수 있는 벙거지와 스패치, 장갑 등으로 40개 수량을 채웠다.
서울대관악산입구에서 우리 팀을 만난다. 참석자가 많다. 오늘이 12월 세 번째 일요일, 종산제가
아닌가, 굳이 시산제니 종산제니 하는 행사일이 아니라도 참석자가 많으면 집행부가 신이 난다. 한쪽
벤치에다 어제 사온 물건을 펼쳐 놓는다. 마음에 꼭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나씩 골라간다. 10시
20분에 관악산 매표소를 통과한다. 기념품장사가 생각보다 빨리 끝난 셈이다.
오늘의 참석자는 모두 21명. 사진의 뒷줄 왼쪽부터 백금석, 이우철, 김임섭, 장웅태, 오재홍,
김동인, 이춘호, 민경은, 이상철, 원정상, 김창민, 유희봉, 원호원, 박훈신, 양건일, 김흥식,
박래원, 최영순, 박홍식, 그리고 사진기 들고 있는 방석순 해서 모두 21명이다. 양건일이는 오늘
처음으로 나왔는데 지난 초여름에 산우회에 나오겠다고 도근회편에 우량애를 보내와 신고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부터 산에 나올 거라고 하복등산복을 장만했었다 가 입어보지도 못하고 정작 오늘은 겨울이라 새로이
겨울등산복을 장만했다 한다.
어제 저녁에 남산힐튼호텔에서 딸의 혼사를 치룬 김창민이도 씩씩한 얼굴로 나왔다. 자!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산행예보에는 총무가 환갑뒤풀이를 한다고 했는데, 눈치를 보아하니 김창민이가 혼사 턱을 낼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양건일이도 신고 턱을 낸다고 할 것 같다. 자 이럴 때 보통은 점심을 먹으면서
조정을 하는데 오늘은 無食산행이라 조절할 시간도 없고...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 되도 되겠지.
지난번에 삼성산을 오를 때는 관악산주차장의 오른쪽에 있는 관악구문화회관과 건영아파트 사이로 난 길로
올랐었다. 오늘은 점심을 내려와서 먹어야하니 빠른 길로 관악산 정문을 통과한다. 매표구를 지나 시멘트
포장길을 죽 따라 가다가 물레방아가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꺽어 성주암쪽으로 접어든다. 제법 길이
호젓하다. 관악산에서도 이런 분위기의 길이 있었었나? 상철이가 이 길에서 청춘남여가 뽀뽀하는 걸
봤다고 한다. 당연히 화제는 뽀뽀로 옮겨간다. ‘어이 재홍아 너, 산에서 뽀뽀해 본 적 있냐?’ 누가
묻는다. ‘나는 산에서 안 해봤어’ 재홍이 대답이다. ‘그러면 야외에서는 해 봤어?’ 이번에는 범위를
널펴 물어 본다. ‘그럼, 그건 해봤지?’ 참으로 싱거운 놈들. 이 나이에 입으로 양기가 올랐니
어쩌니 해도 고등학교동창들 아니면 어디서 이렇게 싱거운 소리로 흉허물 없이 웃어 볼까?
호젓한 낯선 길을 빠져나와 능선으로 올라붙었더니 눈에 익은 칼바위 능선이다. 관악구청 문화회관 쪽에서
칼바위 능선을 오르면 여섯군데의 오름팍이 있는데 5번째 오름팍 직전으로 빠저 나온 것이다. 지금까지는
양지발라서 길에 눈이 전혀 안보이더니 이쪽에는 제법 눈이 쌓여있다. 바위틈 사이로 눈이 듬성듬성하지만
양지쪽 바위돌 위에 옹기종기 둘러서서 막걸리를 마신다. 우철이는 우리 홈피를 안보는 모양이다. 분명히
점심불요라고 고지를 했는데도 빈대떡이랑 김치볶음을 반찬으로 점심을 착실하게 잘 싸왔다. 커! 막걸리에
빈대떡 이면 안주로 제격이 아닌가. 두 잔을 거푸 마시고 뒤를 돌아보니 창민이는 김밥 한 줄을
꺼내들고 우적우적 씹다가 하나를 먹어보라고 준다.
밧줄까지 매달려 있는 5번째 급경사 오름 팍도 지나고 6번째 오름 팍인 칼바위를 우회하여 평편한
봉우리에 올랐는데 호암산이다. 호압사쪽으로 금석이를 앞세워 일행을 보내고는 창민이와 웅태랑 으슥한
곳을 찾아 들어가서 그놈의 몹쓸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호연이로 부터 전화가 온다. 호압사 길을 아는
놈이 앞장을 서야지 뭐하고 있냐고 야단을 친다. 황급히 갔더니 갈림길에 다들 모여 서서 칭찬이
자자하다. 곧장 가다가 호압사라는 표지를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되지만 응달 급경사길이라 눈이
쌓여있을게 분명해서 속으로 켕기고 있었는데 금석이가 오른쪽으로 가자고 한다. 잘 됐다. 걱정을
덜었다.
눈이 잔뜩 쌓인 길을 따라 내려가서 아침 산책객이 모이는 체육공원도 지나고 무슨 성당을 지나 큰길로
나섰더니 안양에서 쑥고개로 빠지는 호암길이다. 핸폰을 보니 1시 10분. 버스를 타고 신림사거리에서
내려 삼겹살집으로 찾아들어간다. 밖에서 보기보다는 큰집이다. 한쪽 방에 우리식구가 다 들어가고도
반이나 남는 큰 방이다.
금년 산우회회장인 원호연이 올해 계획된 52회 산행 중에서 50회의 산행을 즐겁게 그리고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모두에게 감사한다고 한마디 하고 총무 김임섭은 회계보고를 한다. 금년에 새로 나온 멤버
중에서 출석 빈도가 제일 높은 김동인과 이상철에게 아이젠을 부상도 건넨다. 오늘 처음 나온 양건일이도
환영의 박수 속에서 자주 나오겠노라고 한마디 하고, 내년 산우회 회장으로 미리 노미네이트되어 있던
방석순도 일어나서 내년에도 잘 해보자고 한마디 했고 총무로 이상철을 지명하니 상철이가 수락한다. 이제
공식적인 종산제의 순서가 다 끝났다.
사람이 21명이나 모인 술자리니 제법 질펀하다. 이리저리 술잔이 오고 간다. 계산이 꽤 나왔을 법하니
창민이가 ‘왜 이리 많이 나왔어’하고 농담반 진담반을 하며 계산을 한다. 영순이와 금석이는 먼저 갔고
당구 팀과 노래방 팀으로 나뉘어 일단 헤어진다. 노래방에서 한 시간 추가까지 하고 놀았으니 두 시간이
지난 셈인데 생맥주집에 당구팀이 모여 있다고 핸폰이 울린다. 노래방 팀이 우 몰려갔더니 좁은 맥주집이
우리 팀으로 전세다. 일행 모두가 주인아주머니 한명과 괜히 히히득거리며 열심히 웃고 떠들었는데 테마가
무엇이었는지 기억도 없다. 맥주 값은 건일이가 부담했으니, 결국 임섭이의 환갑 턱은 다음 주로
밀렸다. 소주에 맥주에 잔뜩 취해 밖으로 나왔더니 전구로 휘감긴 나무가 크리스마스트리가 번쩍번쩍
했고, 카세트테이프를 파는 리어카에서는 Feliz Navida가 힘차게 울러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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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223 도봉산산행 및
김임섭수연기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이제 금년 연말이면 산우회 총무직도 끝이다.
지난주 금요일, 산우회 회장 대권인수위원회에 전해 줄 핸폰 메시지명단을 엑셀로 정리했다. 모두
70명. 민용기를 새로 등재하니 71명으로 늘었다. 아래위로 훑어보다 오세영의 이름과 019 어쩌구로
시작하는 전화번호가 보인다. 그 줄에 커스를 갖다놓고 딜리트 키를 누른다. 그냥 지워지면 좋으련만
무심한 컴퓨터는 ‘정말 삭제하시겠습니까?’ 하고 묻는다. 예스를 누른다. 순식간에 그 줄이 사라졌다.
세영이는 이 세상에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이제는 산우회 명단에도 없다. ‘♡ 41회산우회 ♡’로
시작하는 매주 산행 알림메시지도 이제는 가지 않을 거다. ‘세영아! 핸폰 메시지가 가지 않더라도
혼자서라도 좋은 곳으로, 좋은 산으로 훨훨 다니려무나.’
10시가 넘어서 도봉산역에서 산행안내게시판 앞 모임장소로 젠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회장 호연이로부터
전화가 온다. 자기는 어제 밤에 설악산산장에서 자고 아침을 먹고 지금 서울로 출발하는 길이란다. 몇
명이나 참석했냐고 묻는다. 아직 도착 전이어서 몇 명이 왔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웃는다. 회장이 없을
때 농땡이 좀 쳐야지 하고 미안 땜으로 몇 마디 덧붙인다. 얼른 핸폰시계를 보니 10시하고도
25분이다. 엊저녁에 늦게까지 마신 술 때문에 많이 늦다.
내가 제일 꼴지로 도착했으니 바로 출발이다. 최저 0도, 최고 영상8도의 일기예보 탓인지 등산객이
많다. 매표소를 통과하여 첫번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신축 중인 능원사 앞을 지난다. 2002년
5월부터 몇 년째 공사를 하고 있더니 이제 마무리 단계인지 담 안으로 석가탑 모양도 보이고 다보탑
모양도 제자리를 잡고 있다. 대웅전쯤으로 되어 보이는 건물의지붕 양쪽 용마루에는 날개를 활짝 편
금색이 찬란한 학도 올라앉았다. 아무리 절이라고 해도 그렇지 국립공원 안에 어떤 연고로 이렇게 대형
절을 짓도록 허가를 해주었을까. 이거야 말로 요새 유행인 특검팀을 투입하여 조사를 해봤으면 속이
쉬원하겠다.
오늘 참석자는 모두 11명. 사진의 저 뒤쪽부터 유희봉, 최정길, 김동인, 박홍식, 이상철, 김임섭,
원정상, 도금회, 방석순, 장웅태 그리고 이 사진을 찍고 있는 백금석이 우리의 일행이다. 사진의 맨
오른쪽 사람은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인데 기차게도 민경은 영감을 닮았다. 민영감은 내년에
외곽지역으로 이사를 가서 산행에 자주 참석하지 못한단다. 회장 호연이는 새로 맞이한 며느리와 함께
식구들이 주말을 설악산산장에서 보낸다고 불참이다. 전화로 며느리와 같이 간다는 걸 애써 강조를 하길래
며느리가 그렇게 이쁘냐고 했더니 입안에 웃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허허허 그럼, 아주 이쁘지 한다.’
박태국은 이번에도 산행을 잘 하라는 메시지만 보내오고 불참이다.
능원사보다 소박해 보이는 도봉사를 지나 우이암으로 곧장 오르는 보문능선은 도로로 치면 간선도로에
해당된다. 그러니 사람들도 많다. 이 많은 사람을 다 품을 수 있는 산은 참 너그럽구나 하고
생각한다. 나도 산처럼 너그러울 수만 있다면... 이쪽 길은 특별히 가파른 깔닥고개도 없고 완만히
오르는 길이니 땀도 그다지 나지 않고 숨을 고르느라 쉴 일도 별로 없다. 우이암을 지척에 두고 호젓한
곳에서 방 빼기를 기다렸다가 점심을 간단히 먹고는 또 방 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그 자리를
물러주고 일어선다.
보문능선의 마지막 자락을 올라 도봉주능선을 따라가다 우이암에 다다른다. 예닐곱쯤 되는 남녀일행이
자일로 우이암을 오르고 있다. 멀리서 볼 때는 3명이 우이암 꼭대기에 올라 있는 것만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위에 오른 사람들의 지시에 따라 또 한명이 오르고 있다. 의지할 곳도 없는 직벽 바위를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하는 폼이 초보자다. 우이암를 처음 오르나 보다. 노란 안전모를
쓰기는 했지만 허리보다 엉덩이가 굵은 것으로 봐서 여자임이 분명한데, 이 겨울에 제법 바람까지 부는
날씨에 차가운 바위를 껴안다시피 스파이더처럼 바위에 붙어서 오르는 담력이 대단하다. 결국은 꼭대기에
올랐는데 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안도해 한다.
우이암에서부터는 완만한 내리막 하산길이다. 원통사를 지나 지난번에 최정길이를 따라갔던 방학동코스를
오늘도 최정길이를 따라 내려간다. 정길이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목욕탕인데요, 옻 들어간 것
2개하고요 안 들어간 것 1개하고 잘 부탁합니다.’ 한다. 정길이 사모님이 방학동에서 목욕탕을 하고
있으니 이쪽에서는 목욕탕으로 통하나 보다. 산행 뒤풀이로 오리탕을 시키면 나올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지난번에 정길이를 따라 들렸던 집이 맛이 괜찮았던 기억이 있어서 며칠 전에 정길이에게 미리
예약을 해달라고 했더니 그러마 하고는 고3때 짝궁 환갑산행에 빠질 수 없다고 오늘 산행까지 함께한다.
방학동을 거의 다 내려와서 천주교 묘지 가운데로 뚫린 길가 오른쪽에 있는 백파 홍성유선생의 묘 앞에서
잠시 길을 멈추어 전처럼 담배도 한대 올리고 비문도 다시 읽어본다. 이야기가 옆으로 새지만 우리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호젓한 산길을 가다 보면 Y자로 산길이 갈라지는 곳의 둔덕 쪽에는 나지막한
봉분이 홀로 있곤 했었다. 주로 과년한 처녀가 죽으면 이렇게 묘를 썼다는데 여기에는 이런 애달픈
사연이 있다. 산길을 가는 과객이나 나무꾼들이 Y자로 나누어지는 길에서는 보통은 앉아서 쉬게 되고,
쉬다가 소피가 마려우면 묘지 쪽으로 돌아서서 볼일을 보게 되는데, 이러면 과년해서 죽은 처녀귀신이
볼일 보려고 꺼내놓은 남자들의 양물을 보게 된다. 그렇게라도 남자 양물을 보면서 원을 달래라고 Y자로
갈림길에 묘를 썼다고 하는데, 일부러 그랬는지 긴 세월 때문인지 요즈음은 가뜩이나 나지막한 봉분이 다
뭉거러져 흔적이 희미하거나 찾아볼 수가 없다.
오리탕집에서 주인 아낙이 어서 오라고 우리를 반긴다. 평소에 별로 말이 없는 장웅태가 ‘지난번보다
아주머니가 많이 이뻐지셨네...’ 하는 넉살에 모두들 웃는다. 방안에 앉았더니 기다릴 틈도 없이 이네
커다란 오지그릇에 잘 익은 오리탕이 나온다. 찹쌀을 듬뿍 넣고 끓여서 국물이라기보다는 찹쌀 죽에
가깝다. 시골에서 담아 와서 땅에 잘 파묻어둔 독에서 꺼낸 김장김치라며 주인아낙이 특별히 권하는데
도근회가 아주 맛있어한다. 총각김치는 약간 쉰듯해서 더욱 깊은 맛이고 정길이는 이놈이 맛이 있다고 한
접시를 더 달라고 해서는 이내 비워버린다. 푹 삼긴 오리고기 한 점에 중간 크기 갓으로 담은 새큼한
갓김치 한줄기를 척 걸쳐서 한입 집어넣고는 친구가 부어준 소주를 들이키니 오매 그놈 참 사람 죽이네.
술이 제법 취하고 우리 동창 중에서 출생 년도가 누가 제일 빠르니 어쩌니 하다가 출생신고를 늦게 하면
과태료를 무느냐 마느냐로 화제가 옮겨 갔다. 일산이 출생지라 자기 친구들 중에는 서당에 다니는 친구도
있었다는 이상철이 ‘淺學菲才하여’로 시작하는 해태사유서를 써내면 과태료를 안 문다는 말에, 淺學菲才한
사람이 淺學菲才라는 문자를 어떻게 쓸 수 있느냐고 다들 한바탕 웃었는데 이번에는 김동인이가 개 패듯이
사람을 때렸다는 말을 옛날식 조서에서는 犬打式으로 사람을 毆打하여 어쩌구 하다는 말에 또 한 번
박장대소를 한다.
그래도 친구환갑에 권주가가 없으면 되겠느냐고 상철이가 ‘받으시오~’하고 권주가를 불렀고 맥주 6병은
다 비우고 소주 6병중에서 1병은 반납하고 적당히 취해서 아주 유쾌한 기분으로 일어섰다. 물론 계산은
내가 했고 오리집을 나서서 연산군 묘지 앞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잘 먹어준 친구들아 고맙다. 70회 생일도 다 같이 맞이하자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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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230 청계산산행기
오늘은 2007년의 52번째 일요일이니 우리는 52번째 산행을 한다. 지난
수요일의 서울 최고온도가 13.8도로 기온을 측정한 이래 최고로 높은 온도라더니 금요일 밤에는 비를
뿌렸고, 어제 토요일은 황사가 몰려왔고 오늘은 무지하게 춥다. 월간 산행예고는 속리산 문장대였는데
주말에 폭설과 한파가 온다는 기상예보 때문에 청계산으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역은 토요일 낮부터 눈이 내려 밤중에는 대설주의보가 예상된다기에 작년 12월17일
관악산의 설중 비경산행을 떠올리고는 내심 기대가 컸었다. 커! 눈 속의 산행.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지 않은가? 계곡도 능선도 바위도 산길도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이고 나뭇가지는 쌓인 눈을 버티기가
힘들어 축 널어지고, 앞서가는 사람이 툭 치고 지나간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눈이 모자에, 등산복
어깨위로 흩날려 떨어지는 황홀한 백색의 세상.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아침에 일어나 창문 밖을
내다보니 주차장에 새워둔 자동차위로 수북해야 할 눈은 기척도 없고 싸늘한 냉기만 느껴진다.
옛골 버스종점에 도착하여 길 건너 두부집 앞으로 간다. 원호연, 원정상, 유희봉, 백금석, 이춘호,
이상철, 최영순, 방석순이 미리 와 있었고 장웅태와 박홍식이 나보다 늦게 왔고 마지막으로 정익신이
왔다. 익신이는 이 추운 날 모자도 쓰지 않고 배낭도 없이 버스에서 내려 우리 쪽으로 온다. 배낭을
버스에 두고 내린 것 아니냐고 누가 묻는데, 산행 중간에 내려와서 상진이네 상가에 들리겠다고 배낭
없이 왔단다. 모자는? 하고 물었더니 ‘모자를 쓰면 귀찮아’ 한다. 염색할 때가 지났는지 아래는
희고, 위는 색 바랜 갈색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려 추워 보인다. 오재홍이도 상진이네 상가에
들려야한다고 불참 메시지를 보내왔다.
두부집 앞에서 사람을 기다리느라 잠시 서있는데 무지하게 춥다. 오늘은 너무 추우니까 매봉까지만 갔다가
내려와서 뜨끈한 해장국으로 점심을 하자고 의견을 모은다. 정토사를 지나 본격적으로 등산로에 접어드는데
오늘따라 익신이가 맨 앞에서 훨훨 날라 간다. 호연이가 익신에게 금석이 배낭을 좀 지어주라고 부탁을
하니 흔쾌히 금석이 배낭을 짊어지고서도 맨 앞장에서 날아간다. 첫 번째 벤치에서 잠시 길을 멈춘다.
땀이 나서도 아니고 숨이 차서도 아니다. 술을 한잔 마시면 좀 덜 춥겠거니 해서다. 호연이의 산초
술병이 순식간에 비워진다.
능선이랄 것도 없는데 오른쪽 원터골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매섭다. 내복까지 껴입었으니 몸은 그렇게 춥지
않은데 밖으로 노출되어있는 볼때기가 무지하게 춥다. 방한마스크로 무장한 춘호와 정상이가 부럽다.
돌문바위가 가까웠는지 스님의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들린다. 이 추위에도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것인지,
오늘도 벌어야만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람에 날리는 가사자락도 춥다. 스님 앞을 지나 돌문바위
앞에서 호연이에게 돌문바위를 돌거냐고 물었더니 돌거란다. 미국에 시집가 있는 딸내미 내외가 건강하고
돈 많이 벌라고 소원하며 호연이를 따라 세 바퀴를 돈다.
돌문바위를 지나 매봉 쪽으로 오르는데 아까 그 스님의 염불소리가 들린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로 시작하는 반야심경이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하는 대목도 지나고,
아는 것도 없고 또, 얻은 것도 없다. 그러므로 아무 소득도 없다하는 無智 亦無得 以無所得故 하는
대목도 지나서 마지막 대목인 가세 가세 저 언덕으로 가세 저 언덕으로 온전히 가면 깨달음을 얻어리라
하는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인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하는 대목쯤에서 매봉 정상에
도착했다.
그래도 정상인데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다들 추워서인지 들은 척도 안한다. 카메라를 꺼내서 얼른
스냅사진을 몇 장 찍고는 바로 뒤돌아 하산이다. 사연이 있는 계단을 내려와 오르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금석, 홍식이와 합류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지런히 원터골로 내려온다.
바깥에 걸어 놓은 가마솥에서 선지해장국위로 무럭무럭 하얀 김이 솟고 있다. 솔밭식당이라는 집으로
들어간다. 따뜻한 곳으로 들어왔으니 안경에 김이 서려 시야가 휘 뿌예져서 여지없는 배삼용 꼴이다.
녹두지짐 두개, 해물파전 두개를 안주로 소주를 들어 붓고 선지해장국으로 요기를 하고 났더니 조금
따뜻해진다. 원나잇스탠드가 어쩌고 왁싱이 어쩌고 떠들다가 버스를 타고 옛골을 벗어난다. 오늘이
12월30일. 진짜 망년회를 하자고 양재동에서 우하고 버스를 내리는데 금석이는 나는 집에 간다 한다.
옷을 갈아입고 상진이 상가집 가야한다는 익신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호연이를 빼고 아홉명이서 아직
3시도 되지 않은 벌건 대낮에 호프집에서 한치다리를 뜯으며 맥주를 들이켰다.
집에 가자고 다들 일어서는데 끈질긴 임섭, 상철, 희봉, 웅태 네명은 오늘만 날인지 노래방에서 또
맥주를 마시며 광란의 시간을 보내고는 그래도 모자란다고 순대국집에 들려서 순대국을 저녁 겸 안주
겸해서 시켰다. 소주에 무슨 원수가 졌는지 2병이나 비우고서야 헤어졌다. 임섭이는 이튿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어제 많이 마신 술 때문인지 추위에 떨어서 인지 눈두덩이 퉁퉁 부어서 영낙 없이 물에 빠진
놈 건저 놓은 꼴이더라나 어쨌대나...
휴~ 이제 산행기를 다 썼다. 이번 주 산행기도 끝, 그동안의 의무방어 산행기도 끝났다. 매주
월요일이면 스트레스였지만 내 딴에는 쓰는 재미도 있었다. 집에는 일부러 컴퓨터를 두지 않아 이글도
사무실에 혼자 앉아서 쓰고 있다. 시계는 2007년 12월 31일 밤 10시를 통과하고 있다.
2시간만 있으면 아듀 2007년이다.
2008년 새해에는 모두 건강하시고 매사 바라는 일들이 순조롭게 성취되길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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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21일 오재홍 보스톤 마라톤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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