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경복 41회 산우회 10명 대청봉 산행기
글쓴이: 경복 41회 방석순 산우 (팔순 기념 산행기)
 
1.

“팔순에 대청봉!”

막 칠순을 넘길 무렵이었다. 박래원 회장 등 산우회를 이끌던 몇몇이 그렇게 호

기롭게 제안했다. 모두들 이구동성 합창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일일까. 매

년 산은 높이를 더하고, 길은 더 멀어지는데. 매 주말 청계산 매봉조차 멀찍이

서 눈인사만 건네고 옥녀봉 근처를 맴돌곤 하던 터였다.


팔순이 눈앞에 닥치며 오기가 발동했다. 무박 2일의 산행으로도 거뜬히 오르

던 곳 아닌가. 누구는 구순에 킬리만자로에 올랐다던데.

‘그래, 못 오를 리 없다. 가자, 설악으로! 대청봉으로!’

어느 해던가, 대청봉을 넘어 소청대피소에서 눈 아래 공룡능선 골을 따라 흐르

는 운해를 내려다보며 전율했던 감동이 되살아났다.


산우회 카톡방에 산행 계획을 띄우자마자 도전자들이 쇄도한다. 숙식, 이동, 안

전 등 여러 사항을 고려해 부득이 선착순 10명으로 제한했다. 그렇게 결정된 회

원이 박래원, 원호연, 최영순, 유희봉, 김태석, 김동인, 노명완, 류지호, 나 방석

순, 그리고 회원들이 용납한 내 짝꿍 이상분. 계획된 일정은 11일 낮 서울을 떠

나 오색에서 숙박, 12일 대청봉에 오른 후 소청대피소에서 숙박, 13일 천불동계

곡으로 하산, 설악산소공원에서 택시로 설악항 이동, 회식 후 서울로 회귀.


5월 한 달은 래원 회장과 자칭 법대 산악과를 졸업했다는 호연의 지휘 아래 주

말마다 빡센 훈련이 계속되었다. 과천 매봉을 넘어 청계산 매봉 주변 봉우리

를 두루 오르내리며 종아리에 알통이 백여 도리어 설악산행을 걱정할 정도. 정

읍사는 영순은 혼자 내장산, 칠보산을 오르내리며 훈련을 거듭.


2.

마침내 출정일인 6월 11일 오후 2시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오색행 버스에 올랐

다. 2시간 반 정도 걸려 도착한 오색은 공기부터 달랐다. 청정 숲속 마을 오색

의 감자바우식당에서 동인의 발렌타인 21세 처녀와 함께 푸짐한 만찬을 즐기고,

그린야드호텔에서 달콤한 휴식.


대망의 12일, 감자바우식당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 후 오전 8시 20분경 남설악탐

방지원센터를 출발, 대청봉 등정에 나섰다. ‘그런데 이 길이 맞아?’ 등산로 초입

에서 벗어나자마자 가파른 오르막에 발 디딜 돌 하나가 마땅치 않다. 헐떡이

며 투덜거리며 오르고 또 올라도 끝도 모를 급경사의 오르막길. 하긴 오색이 해

발 400m 정도, 대청봉이 1708m라니 고도차가 1300m에 이른다.

쉼터에서 가쁜 숨을 고르다 웃통 벗고 운동화 차림으로 산행하는 젊은이들

과 몇 번째 마주쳤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이들이 우리 일행을 궁금해한다. 팔

순 기념 산행이라고 하니 입을 딱 벌리며 놀란다. 숨을 몰아쉬며 오전 11시에 겨

우해발 1000m 지점에 이르렀다.
 
그 높은 곳에서 쏟아지는 물소리라니, 피로가 일시에 씻겨나가는 기분이다. 모

두들 다리 아래로 내려가 차가운 물로 손도 씻고 얼굴도 닦고 정신을 가다듬어

본다.

설악폭포 상단 쉼터, 어지간히 올라왔다 싶어 식당에서 주문해온 주먹밥을 먹었

다. 꿀맛이 따로 없다. 비로소 나무 틈새로 보이는 고봉과 능선의 선경. 고단

한 산행길에도 눈에 띄는 꽃마다 휴대폰에 담으랴 산나물 가려 챙기랴, 상분

의 열성이 감탄스럽다.

산행 중에도 낮잠을 마다 않는 신선족 태석은 뒤늦게 설악폭포에 도착, 홀로 탁

족과 오찬을 즐기고는 오수에 빠졌다가 남은 구간이 더욱 험하다는 래원 전화

에 미련 없이 돌아 내려가 지원팀에 합류했다.

오후 2시 20분 마침내 선발대가 대청봉에 도착했다. 아, 해냈구나!

소청, 중청, 끝청, 울산바위, 그리고 이름도 모를 봉우리들을 잇는 능선과 아련

한 골짜기, 저 멀리 동해의 푸른 바다… 조국 강산의 아름다움이여! 탁 트인 조

망에 초록의 능선도 푸른 바다도 모두 함께 물결처럼 일렁이는 느낌이다. 도착

하는 순서대로 대청봉 정상 표지석을 끌어안고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애

석하게 중도에 하산한 태석을 뻬고 9명이 단체 사진도 한 장 찰칵! 그 아름다

운 경관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에 팔에 달려드는 날벌레는 큰 아쉬움.

3.

정상에서 내려오며 마주친 중청대피소 신축공사 안내판에 공사기간이 ‘준공시’

까지로 씌어있다. 국립공원공단의 무책임인지, 내 무식함인지~


오후 4시 20분 소청대피소에 도착하니 작은 창 하나 열어놓고 예약자 얼굴과 이

름, 주민증을 일일이 대조한다. 판매 물품은 달랑 생수, 햇반과 가스뿐. 딱딱

한 마룻바닥에 몇 번씩이나 머리를 짓찧으며 드나들어야 하는 잠자리, 쉬파

리 떼가 몰려드는 식탁.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꾀한다’는 공단 직원은 그것도 자

연의 일부란다. 이 아름다운 산하와 조악하기 그지없는 편의 시설의 부조화. 슬

리퍼를 질질 끌고 왔다갔다 음주 단속한다며 훈계하는 그의 근무 자세에서 공단

의 대민 서비스 정신(자연과 인간의 차단?)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도 저 멀리 운무 속에 가라앉는 낙조의 아름다움을 어찌하랴
.
13일 이른 새벽 3시 행장을 꾸리는 다른 산행팀의 부산함에 절로 잠이 깼다. 어

제 백담사에서 올라와 잠시 눈 붙이고 대청봉에 올라갔다가 설악동으로 내려

갈 예정이란다. 사실 우리도 밤새 딱딱한 바닥에서 몸부림치느라 제대로 잠

든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원래 계획을 훨씬 앞당겨 6시경 소청대피소를 떠나 8시경 희운각대피소에서 간

단한 아침을 먹었다. 하산길도 가파르고 험하기는 마찬가지. 다리는 후들거려

도 고봉에서 계곡으로 이어지는 설악의 비경에 눈과 가슴의 설렘은 쉬 가시

지 않는다. 고산 라일락인지 수수꽃다리인지 향내를 맡아가며 함박꽃 소담한 미

소에 답하며 설악의 향과 색깔에 취해 온몸의 고달픔을 달래본다.


4.

그렇게 힘겨웠지만 즐거운 산행의 막바지 뜻하지 않는 사고가 발생했다. 무너미

고개 넘어 이름도 고약한 죽음의 계곡 초입에서 희봉이 스틱을 잘못 짚은 탓인

지 그만 급경사 아래로 구른 것이다. 오른쪽 이마에 큰 상처가 나며 지혈도 쉽

지 않았다. 영순의 구급약으로 호연이 응급조치, 간신히 수습하고 태석 차량

에 긴급 지원을 청했다. 태석의 기민한 신고와 요청으로 신선대까지 달려온 119

구급대원들이 속초 보광병원으로 후송, 요행 봉합수술 등 안전한 처치를 받

을 수 있었다.


아마도 나이 탓?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산행이었다. 대청봉이 처음이라는 명완

은 하산 도중 다리가 풀려 몇 번이나 주저앉곤 했다. 베테랑 호연과 래원의 독려

가 없다면 장담하기 어려웠을 장정이었다. 비선대까지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

고 들어온 종원의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일행은 비로소 해냈다는 성취감을 맛

볼 수 있었다.


오후 4시 반경 대청봉 등정팀 9명과 지원팀 4명이 모두 설악항 윤미네에 모

여 축배를 들었다. 엄청난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감회어린 표정들. 잔

을 부딪쳐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하며 또 하나 잊지 못할 추억을 안고 우리는 서

울행 버스에 올랐다. 태석 일행은 예정했던 고성(固城) 탐방을 취소하고 희봉

의 귀가를 도와 우애를 더했다.